[인터뷰] 한종우 한국전쟁유업재단 이사장 “참전용사의 기억 세계와 공유”

“참전용사들의 목소리, 대한민국의 살아 있는 공공외교 자산”

2025-09-29     박세정 전문기자
한종우 한국전쟁유업재단 이사장

[박세정=국방신문 전문기자] 한국전쟁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한반도의 오늘을 설명하는 핵심 사건이다.

그러나 전쟁을 체험한 세대가 줄어들면서 그 기억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참전용사들의 목소리를 기록해 전하는 일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와 국제사회 모두가 함께 계승해야 할 귀중한 교훈이 된다.

한국전쟁유업재단(Korean War Legacy Foundation, KWLF) 한종우 이사장과 인터뷰는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스스로를 설명하는 방식, 그리고 미래 세대가 어떤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었다.

“기록은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살아 있는 교재입니다”

문) 2012년 한국전쟁유업재단을 설립하며 한국전쟁의 기억과 유산을 보존하는 중요한 여정을 시작하셨습니다. 당시 개인적으로 어떤 계기나 경험이 결단의 배경이 되었는지, 그리고 재단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와 사명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답) 한국전쟁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반도의 현재를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한 세대는 빠르게 사라지고 있고,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전하는 일은 한국 현대사와 국제사회 모두에 소중한 유산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한국전쟁유업재단 설립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미국 시라큐스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한국의 대미외교와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해 온 외교관으로 주미한국대사관을 개설한 한표욱 대사의 이름을 딴 ‘한표욱 강연 시리즈’를 운영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지역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고, 강연에 오신 참전용사분들이 전쟁 중 직접 찍은 사진들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저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 소중한 기억들을 기록하지 않으면 곧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을요.

저에게 참전용사들의 증언은 단순한 개인의 경험이 아닙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오늘날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살아 있는 교재이자, 전 세계 민주주의가 배워야 할 귀중한 교훈입니다. 이러한 사명감을 바탕으로 저는 2012년 한국전쟁유업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지금 재단은 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한국전쟁 구술 아카이브를 보유한 기관으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단순한 기록 보관소에 머물지 않습니다. 저는 참전용사의 목소리를 전 세계 교실로 가져가고, 한국 민주주의와 발전의 경험을 세계와 공유하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이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지난 7월 1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Discover Korea Research Fellow 프로그램 발대식이 열렸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유엔 참전국 역사교사 협회 관계자와 교사 등 총 30명이 참가했으며, 한국을 깊이 이해하기 위한 11박 일정의 ‘한국 배우기’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참가 교사들은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국립묘지를 찾아 충혼탑을 참배하였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헌화와 분향을 하며 한국전쟁에서 희생한 영령들을 기리고, 한국·유엔 동맹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사진=한국전쟁유업재단 제공)

‘디지털 메모리 뱅크’로 참전용사 기억을 세계 교육현장으로

문) 한국전쟁유업재단은 참전용사 아카이브 구축, 국제 역사교사 단체인 유로클리오와 협력, 교육자료 출판 및 배포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고 핵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업은 무엇입니까?

답) 저는 재단의 대표 사업으로 2012년 국가보훈부의 지원으로 시작한 ‘디지털 메모리 뱅크(Digital Memory Bank)’를 꼽습니다. 현재 22개국 1500여 명의 참전용사 구술 기록과 사진, 지도, 문서가 온라인 아카이브로 구축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단순히 자료를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교사들이 교실 수업에서 곧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가공하여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역사 교사들이 가르쳐야 할 전쟁이 너무도 많아서 원자료만 제공하면 이 자료를 교안으로 가공할 시간도 부족하여 폐기되는 것이 일반적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재단은 교사들이 수업 현장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맞춤형 교재를 한국적 시각과 입장에서 재구성하여 실제로 각 참전국의 역사교육 현장에서 활용케 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재단은 미국, 캐나다, 유럽의 역사교사협회와 교사들과 협업하여 탐구 기반(Inquiry) 수업안과 교사 재교육 컨퍼런스 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국제 바칼로레아(IB) 과정과 연계해 전 세계 5000여 개 국제학교에서 한국전쟁 관련 수업이 가능하도록 준비 중입니다.

저는 이러한 활동을 ‘한국형 비빔밥 교재’라고 표현합니다. 비빔밥을 먹으려면 재료를 손질하고 양념을 더해야 하듯, 교사들이 바로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한 교재를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의 역할입니다.

이처럼 한국전쟁유업재단의 활동은 단순한 기록 보관소의 기능을 넘어섭니다. 참전용사의 목소리를 전 세계 교실로 옮겨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교육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유업재단은 2024년 미국 역사교사 협회 연례 총회에 전 유럽 역사교사 협회장 및 소속 협회장과 동구유럽 협회 대표를 초청했다. 유업재단은 미국, 캐나다, 유럽의 역사교사 협회와 교사들과 협업하여 탐구 기반 수업안과 교사 재교육 컨퍼런스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한국전쟁유업재단 제공)

월드 콩그레스, 한국전쟁 교훈 미래 세대와 잇는 세계 교육·보훈·외교의 장

문) 한국전쟁유업재단은 매년 ‘월드 콩그레스(World Congress)’를 개최해 오고 있으며,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을 기념해 오는 10월 9일부터 12일까지 뉴질랜드에서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월드 콩그레스의 의의는 무엇이며, 향후 재단이 이 행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계획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답) 매년 열리는 ‘월드 콩그레스’는 한국전쟁유업재단의 국제적 위상을 보여주는 대표 행사이자, 참전국 역사교사 협회 소속 교사와 각계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국전쟁의 교훈을 재조명하고 전후 대한민국이 성취한 동시적 발전을 공유하는 장입니다. 이 대회에는 22개국 역사·사회 교사들이 참여해 한국전쟁의 역사적 의미와 동시적 경제발전과 민주주의, 평화의 가치를 공유하고, 이를 어떻게 교실에서 가르칠지 구체적인 수업 방안을 논의합니다.

특히 월드 콩그레스는 단순한 학술회의를 넘어, 각국 교사들이 협력하여 ‘친한국 교육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이를 통해 한국전쟁을 단순히 냉전사의 일부로 한정하지 않고, 오늘날 민주주의와 국제협력의 생생한 교훈으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 캐나다에서 시작된 교육 협력이 이제는 뉴질랜드, 터키, 그리고 17개 유엔 참전국과 과거 북한을 지원한 동구 유럽 공산권 국가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재단은 이 월드 콩그레스를 글로벌 교육 플랫폼으로 발전시켜, 국제 바칼로레아(IB) 과정이나 각국 교육과정과 연계해 한국전쟁 수업이 보편화되도록 추진할 계획입니다. 또한 온라인 커뮤니티 ‘The 22: Korean War International Legacy’를 통해 22개 참전국 교사와 참전용사, 그리고 가족들이 지속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월드 콩그레스를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자리가 아니라, 전쟁의 교훈을 교육을 통해 미래 세대에게 계승하는 세계적인 교육·보훈·외교의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국가와 교사가 참여할 수 있도록 범위를 넓혀가며, 한국전쟁의 유산을 인류 보편적 자산으로 확산해 나가겠습니다.

다가오는 뉴질랜드 월드 콩그레스 역시 이러한 비전을 구체화하는 장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국가보훈부가 2012년 이래 지속적으로 지원해 온 이번 행사가 전 세계 교육계와 보훈 단체가 함께하는 협력의 장이 되어, 한국전쟁의 교훈을 미래 세대에 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종우 한국전쟁유업재단 이사장은 콜로삐라 한국전쟁 참전용사 가정을 직접 방문하여 유가족을 위로·격려하였다. 방문한 참전용사 가정에서는 참전용사의 사진, 훈장 및 배지,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들이 소중히 간직되어 있었다. (사진=한국전쟁유업재단 제공)

한국전쟁의 교훈을 세계와 나누는 글로벌 플랫폼 ‘RISE Global Korea’

문) 재단 활동을 통해 큰 성과를 거두셨지만,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어려움과 제약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동안 가장 큰 도전과 한계는 무엇이었으며, 앞으로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실 계획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답) 한국전쟁유업재단을 설립해 지난 10여 년간 국제적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단연코 안정적인 재원 확보였습니다. 지금까지 재단 운영은 주로 국가보훈부의 지원에 의존해왔는데, 더 많은 사업을 전개하기 위해 민간 모금과 기업 후원도 시도하려 합니다.

포스코에서 한 차례 후원을 받은 경험은 있지만, 아직 대기업이나 방산업체 차원의 지원은 전무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으로 K-방산이 주목받는 시점에서, 한국전쟁의 역사적 가치와 방산기업의 글로벌 이미지가 결합된다면 커다란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 저는 ‘RISE Global Korea(비상 글로벌 코리아)’라는 새로운 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UN 참전국 교사와 학생들을 초청한 모의 UN 대회 개최 △미국 내 친한파 네트워크 조직화 △국제사회에서 공공외교 로비 활동 등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미국 유대인 로비 단체인 AIPAC(미국이스라엘공공문제위원회)을 자주 떠올립니다. AIPAC이 미국 정치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되었듯, 우리도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는 친한파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로비가 아니라, 한국을 이해하는 글로벌 시민을 길러내는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저의 비전은 단순히 재단의 생존을 넘어섭니다. 참전용사들의 구술 기록과 유산을 보존하는 것을 넘어, 한국전쟁의 경험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발전 이야기를 국제사회와 공유하며, ‘지속 가능한 한국과 세계의 연대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제가 지향하는 길입니다.

한종우 이사장의 저서 『한미 관계의 대변환(The Metamorphosis of U.S.-Korea Relations)』에 수록된 지도. 빨간 점선 ‘SS 라인’은 한국을 태평양 전략 질서에 편입하려 했던 미국의 의지를, 파란 점선 ‘TF 라인’은 한국이 전략적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던 시기를 상징한다. 두 선 사이의 공백이 곧 한반도 현대사의 전략적 혼선과 불안정을 보여준다. (사진=한종우 이사장 제공)

“한미동맹은 선택이 아닌 역사적 필연”

문) 정치학 박사로서 학문적 연구와 강의를 이어오면서 한반도의 세계사적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지요? 또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격변기를 지나온 한미관계의 변화 속에서 앞으로 한미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답) 저는 정치학 박사로 대학에서 한반도 국제정치를 강의하면서, 늘 한반도의 지정학적 의미와 한미관계의 본질을 강조해왔습니다. 사실 한반도는 19세기부터 ‘코리안 퀘스천(Korean Question)’이라 불리며 강대국의 이해가 충돌하는 무대였습니다. 미국 제독 슈펠트(Schufeldt)가 남긴 서한에서도 이미 1880년대에 이러한 예견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한반도는 러시아, 일본, 중국, 미국 등 열강의 각축장이었고, 때로는 버려졌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한국은 분단과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었지만, 오늘날 세계 유일의 자유민주주의 한반도로 성장했습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북한 문제 해결과 항구적 평화 정착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미국의 역할도 냉철히 바라봅니다. 1949년 미군 철수와 애치슨 선언은 한국전쟁 발발의 빌미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분단의 책임이 있지만 동시에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지원한 중요한 파트너였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한미관계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지만, 저는 한미동맹을 단순한 군사 협력을 넘어선 역사적 필연으로 봅니다. 미국에게 한국은 동북아 안정 뿐만 아니라 남중국해 등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핵심 파트너이고, 한국은 민주주의와 경제 성취로 세계가 주목하는 모델입니다. 따라서 동맹은 위기를 넘어 더욱 성숙한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해야 합니다.

끝으로,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도 우리가 스스로를 지키고 또 세계와 협력해 나가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국전쟁유업재단이 진행하는 구술 아카이브 사업과 국제 교육 프로그램은 이러한 메시지를 널리 확산시키는 중요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청년들은 가짜 뉴스에 흔들리지 말고 역사와 진실에 뿌리 둬야

문) 마지막 질문입니다. 전쟁의 아픔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이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실천적 제안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답) 지금 우리 사회는 지나친 이념 대립으로 분열되어 있습니다. 저는 보수와 진보가 서로의 적이 아니라, 사회 발전을 이끌어가는 두 개의 바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청년들이 기존 정치인들의 밥그릇 싸움과 진영 논리에만 휘둘린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청년들이 우리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자부심을 찾기를 바랍니다.

저는 거짓 정보와 왜곡된 역사 해석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강조합니다. “가짜 뉴스에 흔들리지 말고 반드시 사실에 기반해 사고해야 한다.” 진실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청년 세대가 맡아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입니다.

이를 설명할 때 저는 종종 프랑스 철학자 레몽 아롱의 저서 '지식인의 아편'을 인용합니다. 사르트르조차도 과거 북한이 허위 주장한 ‘남한 선제공격설’에 휘둘린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는 나중에 사과했지만, 이미 왜곡된 인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진리는 결국 드러나지만, 그 피해는 누가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저는 청년 세대에게 당부합니다. 반드시 팩트체크를 하고 역사적 맥락에 기반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해야 한다고요. 그것이 곧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전쟁을 겪은 세대로서 후세에게 전하고 싶은 가장 절실한 교훈입니다.

북극성을 향하는 나침반의 침은 항상 흔들림을 멈추지 않습니다. 이 침이 멈출 때, 우리는 더 이상 북극성을 찾는 탐구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는 도그마로 전락함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