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국군포로의 마지막 절규…“국군포로 송환 언제?”

6.25전쟁 참전, 중공군 포로, 북한 탈출에도 정부 ‘나몰라라’

2020-12-15     김한규 기자
탈북 국군포로 故 정문수 씨의 장례식장.

[국방신문=김한규 기자] 북한에서 국군포로로 잡혀 있다 가까스로 탈북해 남한에서 살다 최근 타계한 故 정문수 씨의 쓸쓸한 삶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故 정문수 씨의 죽음을 계기로 정부의 북한 거주 국군포로 송환 및 탈북 국군포로 지원 대책 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故 정문수 씨는 1926년 경남 하동군에서 태어나 6.25전쟁에 참전하여 경기도 가평군 지암리전투에서 중공군에 포로가 되어 송환되지 못하고 북한에서 소외계층으로 분류된 국군포로의 삶을 살아 왔다.

故 정문수 씨는 북한에서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처참한 생활을 이어 왔다.

북한 땅에서 살 수가 없다고 판단한 아들 정국용(62) 씨는 아내와 딸을 데리고 1999년 북한을 탈출, 중국을 경유해 2000년 8월 26일 대한민국으로 입국을 하게 됐다.

정국용 씨와 가족은 대한민국의 품에서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고, 특히 정국용 씨는 학업에 열중해 한국사회에서 우수한 재원으로 평가를 받고 있었다.

아들 정국용 씨가 탈북한 뒤 북한에서 1남2녀와 함께 생활하던 故 정문수 씨는 탈북브로커들에 의해 납치돼 중국으로 입국을 하게 된다. 브로커들은 남한에 살고 있는 정국용 씨에게 전화를 걸어 금전을 요구해 왔다.

마침 미국 선교사에 의해 협상이 이루어져 故 정문수 씨는 2003년 3월에 딸과 손녀와 함께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와 남한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故 정문수 씨는 2020년 10월 16일 오른쪽 손가락 혈관질환으로 서울시 구로구 소재 고려대학교구로병원에 입원을 했다.

故 정문수 씨는 당시 응급실에서 입원하여 진단을 받은 후 중환자실로 이동해 치료를 받고 있던 중 지난 11월 22일 향년 94세로 사망했다. 입원한지 37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

故 정문수 씨가 손가락 질환으로 입원했다가 사망하는 황망한 일이 발생하자 아들 정국용 씨는 고대구로병원 측에 “의료사고가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하고 강력하게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병원측에서는 의료사고가 아니라고 완강히 부인하고 나섰다. 병원측과 유족 쌍방의 의견이 대립되면서 장례절차가 진행되지 못했다.

병원측에서는 영안실과 치료비의 완납을 요구해 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영안실의 비용이 가중되자 아들 정국용 씨는 재정 압박을 견디지 못해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

정국용 씨는 "아들아, 이 일은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부친의 유언을 받들어 끝까지 ‘의료사고’ 의혹을 파헤치려 했으나 재정적인 면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장례절차 진행했다.

정국용 씨는 국방부와 국군포로송환 지원단체인 물망초(이사장 박선영)의 도움으로 지난 11월 27일 국군수도통합병원 장례식장으로 이동하여 장례식을 치르고 같은 달 29일 대전현충원에 안장을 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북한에 포로로 잡혀가고, 탈북브로커에 납치돼 탈북하는 등 기구한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한 국군포로의 인생이 못내 아쉬움과 씁쓸함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