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원호칼럼] "모병제 시범 도입...병역 판정 다양화" 시급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최근에 제기된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역대 정부에서 출산장려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며 다양한 정책을 펼쳐왔지만, 출산율은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점점 낮아지고 있다. 향후 국가 경제와 사회 등 전반에 걸쳐 인구절벽 시대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공들여 시행하는 출산장려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출산율은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신혼부부들은 눈앞의 고민거리인 안정되지 않은 주거문제, 경력단절 문제, 특히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 등 녹록지 않은 양육여건으로 출산을 늦추거나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미혼의 젊은이들은 비슷한 이유로 결혼까지 포기하고 있어 저출산 문제 해결 전망을 어둡게 한다.
지속적인 저출산 현상은 당장 입영자원 부족이라는 심각한 문제로 귀결된다. 북한과 대치하는 상황에서 지금의 국방력을 유지를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국방부와 관련 학계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대책을 수도 없이 논의해 왔으나 획기적인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다.
국방부는 2025년부터 현재의 병역제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2030년 45만, 2040년에는 40만 등 연차적으로 병력을 감축하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저출산에 따른 입영자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른 대책도 검토하고 있을 것이다.
지속적인 저출산은 현역자원 부족뿐만 아니라 예비군 자원에도 문제를 발생시킨다. 국방부는 병역법과 예비군법을 개정해 올해부터 예비역 장교와 부사관, 병사 등 50명 대상으로 연간 180일을 동원 소집돼 훈련을 받으면 연봉 형태로 현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비상근 예비군제도’를 시범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오래전부터 군무원의 확대와 피라미드형 계급 구조를 항아리형으로 바꾸겠다거나 여성 인력을 확대하는 방안도 제시하고 추진해 왔으나 문제는 항상 예산 마련에 있었다. 지난 대통령 선거 기간에도 모병제, 병사 월급 200만원 지급 등 다양한 병역 정책들이 대선판을 뜨겁게 달군 바 있다.
군 유지를 위한 병역 가용자원은 계속 줄어들기 때문에 병력 감축을 감안하더라도 징병제와 별도로 모병제가 대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국방예산의 뒷받침 없이는 어려운 숙제가 분명하다. 일부에서는 유급 형태의 모병제가 시행되면 고위층이나 재력가 자녀들은 다 빠지고 저소득층 인원들만 모병제에 지원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한다.
모병제는 ‘헌법’에 명시된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며 복무기간에 안정적인 급여를 받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을 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대학 등록금 또는 창업 자금을 모을 기회도 될 것이다. 특히 일정 기간 국가를 위한다는 직업적 특성으로 인해 강한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전투력도 향상될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징병제이든 모병제이든 장병들의 급여 수준을 현실화할 경우 예상되는 수조원의 예산을 어떻게 확충할 것인지 먼저 살펴야 할 것이다. 급여 현실화에 따른 예산 확충 문제를 어렵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이며 혁신적인 대책이 당장 마련돼 시행되어야 마땅하다.
예산확보 면에서 모병제의 전면 시행은 어려울 것인바 시범적으로 기술과 전문성이 요구되는 일부 특수성 있는 병과나 전투병 위주로 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된다. 그러면서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하며 점차 확대하는 방안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징병제도의 근거인 ‘병역법’이나 ‘병역법 시행령’, 국방부 훈령인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 등을 현재에 맞게 과감하게 개정하고 당분간 지금의 징병제를 유지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과거 입영자원이 남아돌던 시대에 만들어진 법과 규정을 근간으로 징병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신장만 기준으로 볼 때 159cm 이하이면 체중과 관계없이 신체등급 4급이며 146cm 미만이면 5급, 140cm 미만은 6급으로 판정하는 것은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다. 신장이 성인남자 평균치보다 작아도, 부동시나 시력이 낮아도 비전투 분야에서 충분히 복무가 가능한데 전투가 가능한 판정 기준 위주의 신체검사와 연령의 기준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적의 침투 여부를 포착하는 열상감시장비(TOD)나 폐쇄회로TV(CCTV) 감시병의 경우 신장과는 전혀 관계없는 보직이며 기타 경계, 운전병, 전산 등도 마찬가지다. 군이 스스로 신체등급이 우수한 자원을 선발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판정 기준만 가지고 현역 입영자원이 부족하다고만 할 때가 아니다.
인구가 적은 나라이지만 중동지역 군사 강국인 이스라엘은 주변국과 전쟁을 대비해 많은 국민이 군에 투입된다. 그중에서도 특이한 것은 자폐증이 있는 인력자원이 적 지역의 변화된 위성사진 분석에 천재성을 보이는 것을 발견하고 이들을 훈련해 분석병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 정서와는 큰 간극이 있으나, 비전투 분야의 병역판정 기준을 다양하고 폭넓게 열어 놓는다면 병역자원 부족 현상은 크게 해소되리라 생각된다.
현역자원 외에도 경계근무나 장비의 정비, 운전 등 비전투 분야에서 하루 8시간 근무하며 출·퇴근이 가능하도록 하고, 월 200만원 이상 급여를 준다면 희망하는 군복무 경력자를 포함한 민간 인력은 상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50대나 60대 연령이 되어도 기본 체력이 있고 시력이 좋아 경계근무가 가능할 수도 있으며 운전도 수십 년 경력에 맞게 차분하게 잘 할 수 있고, 소명의식과 책임감도 더 강할 것이다. 아울러 비전투 분야의 민간 인력은 여성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국방부는 전시를 대비해 싸워 이길 수 있는 강한 군대의 육성 목적에 따라 혈기 왕성한 젊은 전투병을 더 선호한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국방 전반에 걸쳐 꼭 필요한 전투인력과 비전투인력을 구분해 현 국방예산 범위 내에서 ‘징병’과 ‘모병’은 물론 민간 인력이 충원되도록 법과 제도를 개정하고 선택의 폭을 넓히는 등 혁신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때이다.
<류원호 논설위원 약력>
- 국민대학교 법무대학원 겸임교수
- 세종대학교 정보보호학과 겸임교수
- 한국항공우주정책·법학회 이사
- 한국정보기술전략혁신학회 전문위원
- 디지털혁신과미래포럼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