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곤의 스마트금융] 금리, 누가 어떻게 결정할까(최종)
지금은 전 세계가 고금리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유럽 주요국은 마이너스 금리가 일상이었다.
우리나라 투자자들은 마이너스 금리만 생각하면 독일국채 악몽을 떠올리게 된다. 2019년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독일국채는 안전하다’는 엉뚱한 설명으로 고객에게 원금 대부분을 까먹을 정도로 대규모 손실을 초래한 은행의 DLS(Derivatives-Linked Securities, 파생결합증권) 사태는 충격 그 자체였다. 한편으론 현실에서 마이너스 금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건이기도 하다.
2019년 일본은 물론이고 독일, 프랑스, 스위스의 국채금리가 마이너스로 빠져들었다. 2019년 8월 15일 독일국채 10년물은 마이너스 0.711%까지 내려갔고, 코로나 사태 초기인 2020년 3월 9일 마이너스 0.854%로 10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 세계적인 금리인상 도미노로 10년래 최고치인 2.5% 수준까지 상승하여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도대체 마이너스 금리는 무슨 의미이며, 어떻게 가능할까?
2019~2021년 3년 내내 독일국채는 마이너스 금리로 거래됐다. 이 기간 독일 정부는 만기까지 이자를 한 푼도 지급하지 않는 표면금리 0%(zero coupon)의 국채를 발행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독일국채 10년물을 마이너스 0.7%에 매수했다고 치자. 이는 쉽게 말해 국채 1개를 107유로에 매수하고 만기가 되는 10년 후에 100유로를 상환받는다는 의미다[107*(1+(-0.7%))⌃10≈100]. 국채를 보유하는 동안 이자는 한 푼도 없고 만기에 투자원금 107유로보다 작은 100유로를 받는 손해나는 거래다.
물론 만기까지 보유하여 손해 보는 거래를 할 투자자는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당시 이런 독일국채를 매수하는 투자자가 많았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으나 시장에서는 현실이었다.
은행의 예금금리가 마이너스라면 누가 예금을 하겠는가? 고객은 마이너스 금리를 주는 은행에서 돈을 찾아 조금이라도 플러스 금리, 즉 이자를 주는 은행에 돈을 넣을 것이다.
따라서 중앙은행이 아무리 마이너스 정책금리 정책을 쓸지라도 은행이 고객에게 마이너스 예금금리를 적용하는 경우는 현실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2019년 당시 개인 고액예금에 한하여 스위스 UBS은행은 200만스위스프랑(약 26.7억원) 이상은 0.75%, 크레딧스위스은행은 100만유로(약 13.4억원) 이상은 0.40%의 수수료를 부과하여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한 사례가 있기는 하다.
2021년 코로나 사태로 예금이 급증하면서 독일의 최대 은행인 도이치은행과 코메르츠은행은 고육지책으로 예금보호 한도인 10만유로(약 1.3억원) 이상 예금하는 신규 고객에 한하여 마이너스 0.5% 금리를 적용하기도 했다.
일본은 2016년 이후 평균 예금금리가 0.001%로 사실상 제로금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마이너스 금리 시대가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은행이 실제로 마이너스 예금금리를 적용한 사례는 없다.
이처럼 마이너스 금리는 현실적으로 은행에서 존재하기 어렵다. 이는 채권시장에서 기관투자가들끼리 국채를 사고파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채권시장은 증권회사, 자산운용사, 연기금, 보험, 은행, 중앙은행, 국부펀드 등 자본시장의 프로 중의 프로들이 대량으로 거래하는 기관투자가 시장이다.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이자뿐 아니라 매매차익 나아가 환차익까지 겨냥한다.
거시경제, 금리, 환율, 주가 등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고도의 전문가 그룹인 이코노미스트와 애널리스트의 자문을 받아 여러 가지 매매전략을 구사하는 진짜 프로들의 세계다.
예를 들어 마이너스 0.7%에 독일국채를 산 기관투자가는 앞으로 금리가 더 떨어질(국채가격 상승) 것으로 예상하고 매매차익을 얻으려고 한다. 2019년 당시 미중 무역분쟁, 중국의 경기둔화 등 경기침체 요인이 많아 유럽중앙은행이 통화완화정책을 더 강력히 추진하여 독일 국채금리가 더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는 투자세력이다.
다른 한편에서 독일국채를 매도한 기관투자가는 경기둔화와 통화완화정책이 예상될지라도 국채금리가 더 내려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는 투자세력이다.
아무리 전문가라 할지라고 금리 향방에 대한 예측은 엇갈리기 마련이고 각자 투자전략에 따라 시장에서 국채를 사고팔며 치고받는 것이다.
연기금이나 보험사 등 세계 유수의 기관투자가들은 포트폴리오(portfolio)의 상당 부분을 안전자산에 투자한다. 경기둔화, 글로벌 금융위기, 지정학적 위기 등을 견뎌낼 수 있는 안전자산으로 독일국채에 투자하려는 수요는 항상 존재한다.
더욱이 금리 메리트보다는 독일을 비롯한 유럽지역 경기가 호전되어 유로화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환차익을 겨냥한 채권투자 세력도 있다.
어쨌든 시장은 항상 다양한 예측과 전략을 가지고 사고파는 양쪽 세력이 부딪히며 거래가 일어난다. 예측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투자의 세계에서는 돈을 벌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돈을 버는 세력이 계속해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잃는 세력이 계속해서 잃는 것도 아니다.
자본시장에서는 채권(자금)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금리가 결정된다. 하지만 예금금리나 대출금리는 개별 은행이 일방적으로 정한다.
은행은 가끔 다른 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해 고객을 유치하려고 하고, 금융소비자도 열심히 높은 금리를 찾는다. 우량한 은행이 마케팅 차원에서 내놓은 고금리 상품은 가입 한도나 물량이 제한적이어서 돈을 많이 넣을 수도 없고 금방 마감된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높은 금리를 제시하는 곳은 재무 건전성이 양호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잘 따져보고 신중하게 가입하는 것이 좋다. 높은 금리를 찾아 여기저기 예금을 하기보다는 주거래은행을 정해 지속적으로 거래하는 것이 나중에 대출을 받거나 환전이나 해외송금을 할 때 우대를 받을 수 있다.
은행은 ‘대출 기준금리’에 각종 원가요소와 마진(margin) 등을 반영하여 자율적으로 대출금리를 결정한다. 기본적으로 자금 조달금리에 해당하는 대출 기준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고 우대금리를 빼 대출금리를 산정한다.
변동금리 대출은 주로 단기 지표금리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와 시장금리인 은행채 금리를 대출 기준금리로 사용한다. 고객이 서명하는 대출약정서에 변동금리 기준이 명확하게 기재된다. 예를 들어 ‘신규 취급액 기준 COFIX+2.3%’와 같이 대출금리를 대출 기준금리와 가산금리로 표시하고, 보통 3개월마다 대출금리가 변동된다.
반면 고정금리 대출은 장기 시장금리인 5년 만기 은행채나 국고채 금리를 대출 기준금리로 사용한다. 고정금리 대출상품으로는 은행 대출상품과 주택금융공사 정책모기지론이 있다.
COFIX(Cost of Funds Index)는 은행연합회가 국내 주요 8개 은행의 자금 조달금리를 가중 평균하여 산출하는데, 신규 취급액 기준 COFIX, 잔액 기준 COFIX, 신(新)잔액 기준 COFIX, 단기 COFIX로 구분하여 공시한다.
이 중 신규 취급액 기준과 신잔액 기준을 주로 사용한다. 신규 취급액 기준 COFIX는 한 달 동안 신규로 취급한 예·적금 등 8개 항목의 수신상품액을 기준으로 산출한다. 신잔액 기준 COFIX는 신규 취급액 기준 수신상품액에 후순위채나 한국은행 차입금 등을 포함하여 보다 넓은 대출재원을 대상으로 산출한다.
2022년 8월 말 대출 잔액 기준으로 볼 때, 대출 기준금리로 COFIX가 54.5%, 은행채 금리가 36.4%로 대부분 COFIX나 은행채 금리를 사용하고 있다.
양도성예금증서(CD, Certificate of Deposit) 금리 연동대출은 신규 취급이 미미하고 기존대출이 상환되면서 2013년 말 24.8%에서 2022년 8월 말 2.4%로 급감하였다. 은행의 CD 발행액 축소로 CD금리가 대출 기준금리로서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많아 2010년 COFIX가 도입되면서 CD금리 연동대출이 대폭 축소되었다.
가산금리는 은행의 업무원가에다 리스크·유동성·신용 프리미엄, 법적비용, 목표이익률(마진) 등이 포함된다.
리스크 프리미엄은 자금 조달금리와 대출 기준금리와 차이를, 유동성 프리미엄은 자금조달의 불확실성에 따른 유동성 리스크 관리비용을 반영한다. 고객과 관련된 신용 프리미엄은 고객의 신용등급, 담보 종류 등에 따라 대출금이 회수되지 않아 발생할 예상 손실비용을 반영한다.
우대금리는 해당 금융기관과 거래실적 등을 감안해 결정된다. 주로 주거래은행을 정하여 지속적으로 급여 이체, 신용카드 대금 결제, 예·적금이나 펀드 등 금융상품 거래실적이 좋으면 우대금리를 높게 적용받아 대출금리를 낮출 수 있다.
은행의 대출금리는 금융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은행은 ‘은행연합회 모범규준’에서 정한 가산금리 항목 범위 내에서 가산금리를 산출하고 우대금리를 적용하여 대출금리를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신용도를 높여 가산금리를 낮추고, 은행과 거래실적을 쌓아 우대금리를 높게 적용받는 것이 대출금리를 낮추는 방법이다.
은행에서 대출받을 때 고객은 ‘을’의 입장이다. 대출금리가 어떻게 결정됐는지 자세히 따져 묻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최근 신용정보법 등 관련법이 개정되어 금융소비자인 고객의 권리가 한층 강화되었다. 고객은 대출금리의 중요한 요소인 개인 신용평가에 대해 설명을 요구할 수 있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대출받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고정금리로 할 것인지 변동금리로 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에 비해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매우 높아 지난해와 같이 금리가 상승하는 시기에는 금융소비자의 금리부담이 가중되고 금융시스템이나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한다.
가계대출 전체로 보면 우리나라는 2022년 11월 말 기준으로 고정금리 비중이 23.2%로 매우 낮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30.0%를 보인 반면 미국 98.9%(주식담보대출 기준), 영국 93.6%, 독일 90.3%, 프랑스 97.4%로 미국과 유럽 주요국은 90% 이상이다(2021년 말 기준).
우리나라는 가계대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주택담보대출에서 고정금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8월 말 잔액 기준으로 54.1%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금리가 상승하면서 고정금리를 선택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신규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고객 중 70% 이상이 고정금리를 선택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급증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고정금리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였다.
정부는 주택금융공사의 정책 모기지론을 통하여 고정금리 대출상품 공급을 확대해 왔다. 지난해 금융감독원은 은행의 대출구조 개선을 위해 2022년 말 고정금리 대출 비중 목표를 52.5%로 제시하고 행정지도까지 하는 실정이다.
금융기관은 장기간 고정금리로 대출하게 되면 대출 기간 자금조달 금리가 변동하는 리스크를 부담하게 되므로 변동금리보다 높은 고정금리를 제시한다.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보다 높아 고정금리 선택을 주저하게 되고 변동금리를 선택하는 경향이 높다. 최근에는 변동금리가 치솟아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보다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은 은행의 주택담보 대출채권을 유동화한 주택저당증권(MBS, Mortgage-Backed Securities) 시장이 발달하여 고정금리 대출 여건이 양호하다. 우리나라에 비해 합리적인 금리로 장기 고정금리 대출이 가능하여 고객은 대부분 고정금리를 선택한다.
대출이 이루어진 뒤 은행이 대출채권(貸出債權)을 장기간 보유하면 대출 여력이 축소되고 금리변동 리스크도 상당 부분 떠안게 된다. 대출채권을 증권의 형태로 전환하여 자본시장에서 매각하는 유동화 과정을 거치면 대출 여력도 확보하고 금리변동 리스크도 해소하게 되므로 양호한 고정금리 대출 여건을 마련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주요 선진국처럼 적정수준의 금리로 장기 고정금리 대출이 가능하도록 MBS시장을 획기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금리 상승기에는 고정금리가 유리하고 금리 하락기에는 변동금리가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금리라는 게 대내외 경제요소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므로 언제 오르고 내릴지 그 향방을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고정금리로 대출을 받은 금융소비자는 코로나 사태 이후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후회했을지 모른다. 반대로 최근 금리가 치솟으면서 오히려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만족해 할지도 모른다.
코로나 사태가 이렇게 오래 지속될 줄, 인플레이션이 이렇게 심각할 줄, 금리가 이렇게 치솟을 줄 누가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금융소비자가 선택해야 할 문제다. 선택은 온전히 각자의 몫이다. (끝)
<최윤곤 전 금감원 국장 약력>
- 금융감독원 33년 근무
- 자본시장조사국장, 기업공시제도실장, 광주전남지원장, 금융교육 교수 등 역임
-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University of Texas(Austin) MBA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