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장병 부모들 “국방부, 참담한 사고 책임져야” 수사 촉구

“아들 가진 부모 죄인 만든다”···‘얼차려 훈련병 사망’ 사과 요구

2024-06-04     한상현 전문기자
군인권센터와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무사귀환 부모연대’ 회원 등 군 장병 부모들과 시민단체가 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육군 12사단 훈련병 가혹행위 사망사건 규탄 및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국방부의 사과를 촉구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국방신문=한상현 전문기자]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가 숨지거나 훈련 중 수류탄 폭발 사고로 사망하는 등 최근 신병교육대 내 훈련병 사망사고가 잇따르자 시민단체와 군 장병 부모들이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책임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군인권센터와 전·현역 병사 부모연대 등 군 장병 부모 약 50명은 4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육군 12사단 훈련병 가혹행위 사망 사건’에 대한 군 당국의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또 “국방부는 연이어 일어난 참담한 사고에 책임지고 모든 군병과 부모에게 사과하라”고 밝혔다.

지난 2022년 11월 육군 12사단에서 근무하던 아들을 잃은 김기철 씨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국가는 아이들이 힘들 때 신경써주지 않았고, 사건 사고를 막거나 사건의 진실을 밝혀주지도 않았다”며 “무슨 염치로 자식들을 군대로 보내라고 입영통지서를 보내나”라며 분노를 나타냈다.

당시 집단 괴롭힘으로 숨진 고 김상현 이병의 아버지 김기철씨는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허탈하다”며 “아들을 잃었는데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 같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14년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로 사망한 고(故) 윤승주 일병의 어머니는 이번에 군기훈련을 받다가 사망한 훈련병 동기 아버지의 편지를 대독했다.

훈련병 동기 아버지는 편지에서 “아들을 군대에 보낸 것이 후회된다”며 “사망 사건이 있은 지 열흘이 넘도록 이 나라는 누구도 사과하지 않는다. 이해가 안 된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이 아버지는 “수료식에서 어떻게 아들의 얼굴을 볼지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데려오고 싶다”며 “아들을 키워 군대를 보내니 동기가 가혹행위로 죽었다는 고통의 기억을 안고 살게 해 너무 한탄스럽다”고 말했다.

아들이 현역 군인으로 복무하고 있다는 한 어머니는 “나라의 부름을 받고 꽃다운 나이에 가는 군대에서 왜 안 겪어도 될 일을 당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 아들들은 군대 내 불합리함을 참고 견디며 희생해야 하나”고 호소했다.

얼마 전 아들이 전역했다는 한 어머니는 “아들 가진 부모를 죄인으로 만드는 나라가 과연 온전한 나라라고 할 수 있냐”며 “국방부가 참담한 사고에 책임지고 모든 장병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국방부의 사과를 촉구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이번 죽음의 원인은 명백한 가혹행위, 즉 고문”이라며 “경찰은 훈련병을 사망에 이르게 한 중대장 등 관련자들을 긴급체포하고 구속수사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임 소장은 “국방부는 가해자에게 유리한 방향의 정보를 언론에 흘리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군에서 건강한 20대 남성이 사망했다면 정부가 고개를 숙이는 게 우선이지 왜 감추려고 하냐”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달 25일 강원 인제군의 육군12사단 신병훈련소에서 ‘군기훈련’을 받다 쓰러진 훈련병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이틀 만에 숨졌다.

훈련을 담당한 지휘관은 훈련 규정에 어긋나는 완전 군장 상태에서 구보와 팔굽혀펴기를 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날 군인권보호 소위원회 회의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직권조사 개시 여부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25일 열리는 다음 소위에서 재논의키로 했다.

인권위는 “정부와 군 당국에서 진행하는 조사 상황 등을 지켜보고 인권위가 추가로 조사할 사항을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민의힘과 정부는 2일 국회에서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고 최근 잇따라 발생한 훈련병 사망사고와 관련해 모든 신병교육대의 훈련 실태를 긴급 점검하기로 결정하고, 군 안전사고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