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신문=주복식 문화전문기자] 대한민국의 궁궐은 정궁인 경복궁과 이궁인 창덕궁, 이궁의 별궁인 창경궁 그리고 경희궁, 덕수궁이 있다.
경복(景福)이라는 의미는 시경 주아편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마지막 두 글자를 취해 이름을 지었다.
살아있는 왕들이 살았던 궁궐과 죽은 공간인 신위만 모신 종묘 그리고 죽어서 임금의 영원한 휴식처 왕릉들이 있다.
대한민국은 왕조시대의 흔적인 역사를 자랑하는 궁궐들이 많다. 중국은 명나라나 청나라 시대의 자금성 하나만 있고, 지역적으로 우리의 행궁과 같은 지방 궁궐들이 있는 형태이다.
우리와 중국은 왕조시대가 끝나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많고, 일본은 현재에도 살고 있는 궁이기에 단순비교는 무리가 있다.
하나만 있는 자금성과 서울의 궁궐은 관광자원이 다르다. 우리나라 각각의 궁궐들은 나름대로의 특성을 갖고 있다.
경복궁은 국가행사와 대표성을 가지는 행사를, 창덕궁은 유네스코 유산으로 역사와 자연의 조화를, 창경궁은 조선 후기 문예 부흥기의 내용과 여인들의 슬픈 이야기를, 덕수궁은 근대사회를 대표하는 궁궐로 신식문화를 표현하는 궁궐로 활용하며 관광자원으로 가꾸어야 한다.
일본인에 의해 임진왜란과 식민지시대에 많은 부분이 파괴되고 훼손되었던 것을 일부를 복원해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대한민국으로 국격을 높여 주고 있다.
경복궁과 자금성을 간단하게 비교해보면 경복궁은 긴장하며 보는 내가 그곳에 살거나 동일시가 되는 아름다운 문화재인데, 자금성은 겁먹고 느껴보는 문화재의 아름다움이라 그냥 크다고 느끼는 거대한 궁궐이다.
자연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조화되는 궁궐인 경복궁과 반대로, 자금성은 건축할 때 자연을 인공으로 거스리며 가꾼 궁궐이다.
힘들게 재탄생한 경복궁
조선왕조의 정궁으로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고 왕위에 오른 후에 우선 390칸으로 건축한 법궁이다.
태조4년(1395)에 창건 후 세종대왕이 궁궐답게 완성한 궁궐로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다. 명종 때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한 후 임진왜란으로 일본군에 의해 완전 소실되었다가 마지막 임금 고종2년(1865)에 공사를 시작하고 2년 후 1867년에 7,225칸으로 완공한 궁궐이다.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무리하게 지었으나, 지금에서 보면 아름다운 문화유산으로서 대원군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 당시 강제 동원된 백성들의 고통을 나타내는 경기민요 경복궁타령은 대원군을 풍자하고 있다.
조선 초기 왕들은 대부분 근정전에서 임금으로 즉위하였으며, 조그만한 경회루를 태종 때 확장 공사해 외국 사신들을 맞이하고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대원군 시절에 재건한 건물들이다. 화재로 소실되어 중건 삼건 등 계속해서 지어진 건물들이 많다.
대원군 시절에 대비를 위해 지어준 자경전은 10여 년 짧은 기간에 두 번이나 불탔고, 세 번째 지어진 건물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이 지배하던 시기에 많은 건물들이 철거되고 훼손되었다. 경회루와 수정전, 근정전 일원, 사정전 일원 자경전 일원 집옥재 일대만 남기고 개인에게 판매하거나 창덕궁의 내전이 불나자 1917년 강녕전과 교태전을 헐어다가 짓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지금에서 보면 슬픔을 간직하며 불행한 역사로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 있다. 총독부 건물은 흥례문과 영제교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지어 이용하다가 민족정신을 찾는 계기로 철거해 원래 건물들을 건축하였다.
복원 시에는 1907년경에 작성한 북궐도형으로 기준하고 있지만 궁궐답게 완성한 세종조의 궁궐이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