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인 박한 평가와는 다르게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그 구현에 있어 상당한 경지에 올라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국민은 권력을 독점하고자 하였던 이들에게 뜨거운 피로써 항거해왔고, 알게 모르게 ‘문민 독재’의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했던 이들의 구상까지도 철저하게 심판했다.
때로는 ‘직업으로서 정치’에 몸담은 몇몇 이들의 모습이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정교하게 구축된 체계와 운영 방식 등은 분명히 자랑할 만한 단계에 도달해 있다.
그리고 이를 확실히 증명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꽃’으로 불리는 선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그 꽃이 필 때마다 볼썽사나운 네거티브가 난무하고 잊을만하면 나오는 지역감정의 조장, 더욱이 그 옛날의 ‘빨갱이’ 논란까지 소환되기는 하지만, 우리의 선거는 계속되고 있으며 더욱 진일보한 모습으로 발전하고 있다.
1987년 이후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였고,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 치르면서 선거는 어느새 민주시민의 삶 속에서 중요한 이벤트로 자리잡게 되었다.
때마다 열리는 이벤트 중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끄는 ‘빅이벤트’는 단연코 대통령 선거라고 할 수 있다.
‘삼권분립’이라는 권력분립의 원칙에 따라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헌법상 행정부에 속해 있고 그곳의 수반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대통령이 가진 권위와 위상, 그리고 권한은 대통령 중심제라는 진술을 넘어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평가까지도 가능하게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이 직접 임명할 수 있는 자리는 중앙부처 장·차관이나 공공기관의 장 등 대략 3000~4000개에 이른다. 여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범주까지 헤아려 볼 경우, 그 수가 수만 개는 족히 넘는다.
게다가 대한민국 국군의 통수권자이자 최상급자로서 군이 주관하는 각종 행사 때마다 무려 1분 넘게 울려 퍼지는 ‘봉황(대통령 경례곡)’은 그에 대한 경외심마저 느끼게 한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이 나라 안에서 그 누구보다도 대단한 영향력을 갖는 우월한 인사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되려는 ‘큰 꿈을 꾸는’ 후보들은 유권자들에게 다양한 공약을 제시하며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당연히 국민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다짐들로 가득하다.
한때는 소속 정당이나 개인이 가진 방향과 감각에 따라 공약 사항의 결이 확연하게 달라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모두가 성장과 분배의 논쟁을 뛰어넘어 많은 재정을 투입해서라도 국민의 삶에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 정부를 만들겠다고 외친다.
그런 과정에서 다소 현실성이 떨어져 보이는 공약들도 제시된다. 대표적으로 통일문제와 관련한 부분이다.
대통령 후보마다 하나 같이 “북한을 변화시키겠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달성하겠다”며 말 잔치를 벌인다. 대화하든지 압박하든지 어떻게 해서든 ‘임기 내’에 분명한 변화가 일어나도록 하겠다며 호언장담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재정이 아무리 탄탄해도, 집권자가 큰 의지를 갖고 있어도, 더욱이 모든 국민의 뜻이 하나로 모이는 놀라운 일이 벌어져도 쉽지 않은 일이다.
좋든 싫든, 그것이 현실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통일문제의 상대자’이자 우리에게 ‘극복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북한이라는 ‘그들’의 호응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겠다고 나선 인물이라면, 이 땅에 ‘두 개의 한국’이 계속해서 존재하는 한 누구라도 통일문제에 대한 해법을 어떤 방식으로든 내놓지 않을 수 없다.
국민적인 공감대와 관심은 이전보다 사그라든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고려해 볼 때 통일문제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칸트주의적 사고에 입각한 기능주의적 통일론을 기반에 둔 계획들은, 어느 순간에 이르러 ‘거대(巨大) 기획’의 주연을 멋쩍음으로 인도할 공산이 크다.
물론 그렇다고 통일문제와 관련해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키’가 ‘그들’에게 있으니 그들의 변화된 움직임만을 기대하고 기다리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 삶의 터전에서 발현된 문제는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옳다.
그러나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라는 목표를 두고 ‘내가 내 임기 동안에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특히 획기적인 변화를 이뤄내 ‘나의 치적’으로 삼으려는 구상은 모든 것을 그르치는 욕심에 불과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나라에서 시기에 따라 다양한 기획을 접했고, 그 가운데에서 빛났던 이들의 활동도 목도해 왔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 속에서 발현된 다채로운 통일정책도 확인했다.
어느 순간 주목할 만한 ‘역사’를 남기기도 하였지만, 분단의 시간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전과 같은 통일정책을 답습하는 것은 더이상 먹혀들지 않는다는 통찰력이 발휘되어야 할 때다.
적어도 본인 스스로 ‘거대 기획의 주연’이 될 것을 꿈꾸는 대통령 후보라면 “그들과 당장 무엇을 하겠다”는 말보다 “그 가능성은 열어두되 강력한 군사력, 완벽한 행정력, 충분한 경제력을 먼저 구축해 통일의 기반을 다지겠다”는 담담한 다짐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내년에 치르는 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 ‘치적’ 중심의 눈앞 성과보다는 군사력·행정력·경제력을 월등하게 높여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미래 청사진과 함께 이를 강력하게 실천할 의지가 있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곽태환 예비역 공군 대위 약력>
- 고려대 일반대학원 사회학 박사과정
- 고려대 일반대학원 통일정책학 석사
- 국방부 대변인실 파견근무
- 사이버작전사령부 대외협력과 공보정훈담당
- 연세대 항공우주전략연구원 객원연구원
- 공군 제2방공유도탄여단 정훈공보실장
- 공군 작전사령부 공보작전총괄담당
- 공군 학사장교 129기 임관
- 공군참모총장 표창
- 사이버작전사령관 표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