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신문=윤석진기자] 박은정 국방부 ‘민·관·군 합동위원회’ 공동위원장이 19일 “우리 국군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출신으로 서욱 국방장관과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 위원장은 이날 공군에 이어 해군에서 터진 성폭력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과 관련 대국민 입장문을 통해 우리 군을 “건군 75년을 맞는 장년”으로 지칭하고 “여전히 전근대적인 위계와 폭력의 온상이었다는 비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합동위원회를 두고 “우리 군대의 병영 약자들에게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는 것을 알리고, 불편과 고통의 호소에 귀 기울이고 이를 바탕으로 책임 있는 대책을 만들어 다시는 부당한 폭력에 희생되는 장병들이 없도록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출범했다”면서 잇단 성폭력 피해 사망 사건에 대해 “민관군 합동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성폭력을 비롯한 군 내부의 반인권적 요인을 척결하는 데 대한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자각해야 한다”며 “전군의 지휘관과 중견간부들에게도 지금은 변화의 시간이라는 것을 강력히 호소드린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군대 내에서 법과 정의를 실현하고, 차별과 성폭력이 없는 군대를 구현하는 노력의 출발점은 지휘관이어야 한다”며 “아무리 자원을 투입하고 제도를 마련한다고 해도 이를 내면화하고 신념으로 구현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군 지휘관들의 의식 전환을 촉구했다.
그는 “부하의 인격까지 지배하던 과거의 군대와 결별하고, 존중과 배려의 새로운 군대 기풍을 진작하기 위한 장교단의 결의와 간부들의 솔선수범이 절실한 순간”이라며 “우리 병영의 전반에서 아직도 전근대적인 잔재가 남아 있다면, 이 기회에 깨끗이 청산해 국가안보에 대한 책임 집단으로 우리 군은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그는 “민관군 합동위원회의 활동이 지휘관에게 또 다른 부담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변화의 시작이라는 점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날 입장문에서 지난 6월 28일 합동위 출범 후 50여일 동안의 성과로 ‘성폭력 예방 대응 전담조직 신설’ ‘신고부터 사후 관리까지 통합된 지원체계 강화’ ‘성고충상담관의 독립적인 업무수행 여건 마련’ ‘2차 피해방지를 위한 실질적 가해자 및 피해자 분리기준’ ‘금지되는 2차 가해의 구체적 유형 및 명확한 처벌규정 신설’ ‘피해자 법률 조력제도 개선’ 등의 방안 마련을 꼽았다.
그는 이와 관련 “이것들은 성폭력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는 방안이라기보다는 지금의 상황을 일부나마 개선하는 응급조치에 해당되는 방안들”이라면서 “일단 급한 대로 위원회가 의결한 이 방안을 국방부가 조속히 실행할 수 있도록 신속한 조치를 주문한다“고 요구했다.
그는 합동위의 향후 활동에 대해 미국의 군내 성폭력 독립검토위원회보고서 등 외국 사례를 참고해 ‘지휘관 업무수행 평가에 성폭력 예방능력 항목 추가’ ‘성폭력 조사 및 처벌 결과에 대한 정기적인 공개’ ‘비공개를 조건으로 피해사실을 제공한 경우 별도의 보호 및 지원 경로 마련’ ‘신속한 보직 이동이나 피해자에게 유리한 인사조치’ ‘피해경험자의 피해자 지원프로그램 참여’ 등 추가 개선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도 “아무리 충격이 크다 할지라도 국민과 언론은 군을 마냥 질타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군이 제 자리에 중심을 잡도록 힘써 도와야 할 것”이라며 “수사가 종료된 이후 책임의 소재는 분명히 해야 한다”며 우리 군이 바로 서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한편, 합동위는 최근 80여명의 합동위원 중 일부가 그동안의 활동에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중도에 사임 의사를 밝혀 앞으로의 정상적인 운영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사임 뜻을 밝힌 합동위원은 군 출신 유 모, 대학교수 김 모, 연구원 조 모 씨 등 3인으로 알려졌다.
해당 3인 중 한 위원은 소셜미디어(SNS)에 “뭔가 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망설이다가 더 이상 그런 마음으로 끌려 다닐 수 없겠다는 생각”이란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들의 사임은 지난 17일 긴급 소집된 군내 성폭력 차단을 위한 임시회의에 해군 여중사 사망사건 최고위 책임자인 서욱 국방장관과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이 불참하고, 심지어 합동위가 출석을 요구한 사망한 해군 여중사의 소속 부대장도 참석하지 않은데 따른 불만이 직접적인 계기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합동위 임시회의는 애초에 지난 18일 예정됐다가 국방부가 급하게 하루 앞당기는 것으로 일벙을 변경했으며, 그날 서욱 장관이 주관하고 3군 참모총장이 참석하는 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한 긴급 주요지휘관 회의가 열렸다는 점을 들어 ‘고의적 참석 회피가 아니냐’는 의문 제기다.
군내 부실급식 문제와 성폭력 문제, 병영여건 및 군사법제도 개선 등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6월 말 출범한 민관군 합동위원회는 오는 9월 대국민 보고를 끝으로 활동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