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신문=윤석진 기자] 한국이 ‘2021 서울 유엔 평화유지 장관회의’에서 제안한 한국형 ‘스마트 캠프’가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의 업무 모델로 발전할지 여부가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7~8일 이틀 일정을 끝낸 이 회의에서 76개국에 달하는 참가국들이 ‘PKO 임무단의 기술·의료 역량 강화’라는 주제로 PKO 활동의 효율성 강화를 집중 논의한 끝에 정보기술(IT)을 활용해 PKO 임무단의 유기적 통합에 합의하면서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지난 7일 개막 연설과 2세션(파트너십, 훈련, 역량 강화 의제) 기조 발제 등을 통해 유엔평화유지 활동 관련 6대 공약을 발표하면서 PKO 기지 운영의 미래 청사진에 해당하는 '스마트 캠프' 모델을 제시하고 그 모델의 구축 및 시범사업 지원 계획을 밝혀 호평을 받았다.
스마트 캠프란 IT 기술을 활용해 PKO 임무단 내 병력, 시설, 자원 등을 단일 네트워크로 연결·통합하는 작업을 말한다.
서 장관은 이 자리에서 남수단에 파견된 한빛부대를 대상으로 우리의 뛰어난 IT 기술과 인프라를 적용한 스마트 캠프 시범사업을 당장 내년부터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서 장관은 이와 관련 “평화유지신탁기금으로 100만 달러도 추가 배정해 스마트 캠프와 사상자추적시스템, 디지털전환전략이 원활히 이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구체적 계획까지 언급했다.
서 장관은 이어 “대한민국은 최적의 ICT(정보통신)를 적용해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친환경적인 스마트 캠프의 청사진을 제시했다”며 “임무단 현장의 시설, 장비, 자원 등을 효율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데 회원국들이 적극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국방부는 이를 위해 평화구축기금 분담금도 160만 달러에서 250만 달러로 늘리는 한편, 내년 예산에 38억 원을 이미 확보한 상태이며 앞으로 5년 동안 총 118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한국은 이 외에도 유엔 평화유지 신탁기금도 300만 달러로 올해 대비 3배 늘리고, 분쟁예방기금도 250만 달러를 제공하기로 하는 등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적절하고 지속가능한 재원이 조달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지속 가능한 국제평화를 위한 유엔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해나갈 예정”임을 밝혔다.
유엔 평화유지활동 곧 PKO는 적대행위가 끝나 평화 회복 과정에 있는 국가에서 유엔 주도로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한 국제적 행위를 말한다.
이 활동의 핵심은 정전 감시, 무장 해제, 분쟁 재발 방지, 치안 유지, 전후 복구 사업 등이다. PKO는 현재 세계 12곳에서 9만여 명이 임무를 수행 중이다.
PKO 스마트 캠프의 필요성은 현 주둔 기지들이 대체로 열악한 환경으로 임무 수행에 여러 가지 애로를 겪고 있어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으나, 예산과 기술 등의 문제로 여전히 국제사회 숙제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현재 대부분의 PKO 기지는 만성적인 물 부족에 시달리고 전기도 디젤 발전기에 의존하며 쓰레기와 같은 폐기물은 현지 업체에 의뢰해 매몰 처리하는 등 기초적 생활 여건조차 제대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이에 따라 고장이 잦은 CCTV로 주변을 단순 감시하는 등 경계·경비 여건은 물론 인터넷 인프라마저 미흡해 스마트 캠프 구축은 엄두를 내기 힘든 실정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이번 회의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평화유지구상(A4P) 및 평화유지구상 플러스(A4P+)를 통해 보다 강력하고, 안전하며, 효과적인 평화유지활동을 구축하기 위한 유엔의 노력을 소개하고, 유엔 평화유지군의 기술 및 의료역량 강화를 위해 각국에 첨단 정보통신기술 공여 등의 지원을 요청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를 고려해 국방부를 중심으로 한 우리 정부는 ‘스마트 캠프 구축 및 시범사업 지원’ 공약을 이번 회의에 내놓기에 앞서 1년여 넘게 치밀한 준비를 해왔다.
국방부는 육군에서 파견된 5명으로 ‘유엔 스마트 캠프 TF’를 꾸리고 유엔과 회원국의 요구, 수요와 기술 성숙도를 고려해 모두 14개의 관련 과제를 도출했다.
이 TF에서 선정한 ‘스마트 캠프’ 관련 과제는 ▲지능형 통합관제 체계, 부대 출입통제 체계, 스마트 상황전파 체계, 복합 임무수행용 드론 체계, 지능형 경계감시 체계(안전 분야) ▲시설물 통합관제 체계(기반시설 분야) ▲무선네트워크 체계, 지능형 사이버방호 체계(정보통신 분야) ▲차량위치정보시스템(수송 분야) ▲원격의료 지원 체계(복지 분야) ▲태양광 및 에너지관리 체계, 물 재활용 및 모니터링 체계, 폐기물 관리 체계(환경 분야) ▲연료 및 식량 모니터링 체계(연료 분야) 등이다.
이 TF에서 가장 중점을 둔 과제는 PKO 임무단 기지의 지휘통제실에 국가별로 실시간 자료 공유가 가능한 통합관제 체계를 구축하고, 인공지능으로 모니터링한 상황을 분석해 임무단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이 과제가 실현되면 PKO 주둔 기지에서 과거 있었던 적대 행위 사례와 주민들의 우호도 정보를 축적한 빅데이터로 PKO 임무단의 임무 위험도를 예측하고, 사물인터넷(IoT) 센서와 기상조건을 연계해 빅데이터를 관리하고 비상 상황을 예측·경고하는 것 등이 가능해진다는 것이 국방부의 설명이다.
이 TF 구상에 따르면, 영내에 기지국을 세워 자체 LTE 통신망, TVWS(TV 유휴주파수) 통신망 등 무선네트워크 체계를 구축하고,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임무단이 모바일 기기로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PKO의 친환경적 활동 여건 마련을 위해 고효율 디젤발전기와 신재생 에너지(태양광), 에너지 저장장치(ESS) 등을 혼합한 방식으로 기지 내 시설물을 가동하고, 실시간 전력 소비량 공유와 원격 통제를 가능하게 하며, 사용되지 않는 시설물의 전력 소비를 차단하기 위해 지능형 통합관제 시스템과 연계해 에너지를 관리하겠다는 구상도 이 안에 담았다.
또 이 TF는 이번 회의 주제 중 하나인 의료역량 강화와 관련 PKO 임무단 내에서 발생하는 단원 사망 원인 중 사고사(30%)와 질병사(33%)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있다는 점을 고려해 스마트 캠프 구상에 엑스레이 영상 등 의료영상을 AI로 판독하는 시스템과 원격의료 시스템도 포함시켜 PKO간 의료 서비스의 지역 편차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안도 14개 과제 중 하나로 제시했다.
국방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유엔 평화유지 장관회의 특별 전시회를 마련하고 지휘통제실 등 ‘스마트 캠프’ 모델을 참가자들이 실제로 볼 수 있도록 했다.
국방부는 유엔과 함께 내년부터 남수단 한빛부대를 대상으로 최초로 ‘스마트 캠프’ 시범사업을 본격 시작한다.
국방부는 “전 세계 PKO 임무단이 한빛부대에 가서 어떻게 스마트 캠프가 돌아가는지 볼 수 있게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어 이 시범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PKO '스마트 캠프‘의 모델이 될 전망이다.
국방부는 아울러 2023년 이후 전 세계 PKO를 대상으로 ‘스마트 캠프’를 확대해 나간다는 원대한 계획도 세우고 있다.
한국이 ‘스마트 캠프’ 공약을 발표한 이번 회의 2세션을 진행한 아툴 카레 유엔 운영지원국(DOS) 사무차장은 한국 정부를 향해 “이와 관련한 조율을 위해 곧 연락하겠다”며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한빛부대 ‘스마트 캠프’ 외에 향후 다른 PKO 기지를 대상으로 한 확대 시기와 범위는 유엔과 참여국들이 협의해 예산과 각 지역의 기반 환경 등을 고려해 결정될 예정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이번 회의 폐회사에서 유엔과 국제사회의 지원에 힘입어 전쟁의 참화를 극복한 우리의 경험을 상기하고 “한국은 평화유지를 위한 우리의 노력이 앞으로 어떠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라며 “‘서울 이니셔티브’가 우리의 평화유지 요원들이 평화를 수호하고 현장의 취약한 민간인들을 보호하며 그들의 목표와 의무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어줄 것”이란 기대를 표명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유엔과 회원국 간의 긴밀한 파트너십을 구축하여, 헬기 공여와 여성·경찰 평화유지요원의 임무수행능력 향상을 지원하는 등 모범적인 사례를 계속해서 제시해 나가겠다”며 보다 강력한 PKO를 만들기 위한 여정에 국제사회 전체가 동참해줄 것을 당부했다.
장-피에르 라크루아(Jean-Pierre Lacroix) 유엔 평화활동국 사무차장은 폐회사에서 “한국의 장관회의 주최와 평화유지활동 강화를 위한 핵심적 기여”에 사의를 표하고, “회원국들의 정치적 지지와 공약이 PKO 임무 이행과 평화유지요원들을 지원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수백만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