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1855~1934).(자료 사진=국가보훈처 제공)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1855~1934).(자료 사진=국가보훈처 제공)

[국방신문=윤석진 기자] '6형제' 일가가 모두 독립운동을 했던 우당 이회영의 둘째 형인 이석영 선생이 서거한 지 88년만에 그의 외증손 10명이 생존해 있는 사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국가보훈처는 23일 “이석영 선생의 장남인 이규준 선생이 온숙, 숙온, 우숙 세 딸을 뒀고, 이들의 자녀 가운데 10명이 살아 있다”며 ‘독립유공자 확인심의위원회’에서 “그동안 확보한 자료와 유전자 검사 결과를 종합해 이석영 선생의 외증손 및 장남의 외손 총 10명을 후손으로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이석영 선생 가계도.(자료=국가보훈처 제공)
이석영 선생 가계도.(자료=국가보훈처 제공)

이번 후손 확인은 지난해 8월 이 선생의 외증손녀라고 주장하는 최광희‧김용애씨 부부가 독립유공자 등록 신청을 한 것이 단초가 됐다.

당시 신청인들의 제적부에 기록된 조부모 이름이 이 선생의 장남인 규준과 달라 후손 여부를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보훈처는 이 선생의 손녀이자 장남의 셋째딸인 대만 거주 우숙씨의 대만 호적등기부에서 ‘부 이규준(李圭駿), 모 한씨(韓氏)’, ‘출생별 삼녀(參女)’ 라고 기재된 사실을 통해 후손임이 입증됐다.

보훈처는 또 대만 거주 후손과 국내 신청인과의 혈연 관계 검증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고, ‘동일 모계(母系)임이 배제되지 않음’이란 회신을 받아 두 사람이 같은 어머니의 혈족으로 판명됐다.

이 선생의 후손은 지금까지 존재가 드러나지 않아 끊긴 것으로 알려졌었다.

이 선생은 1910년 일본이 조선을 병탄한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자 형 건영과 동생 철영, 회영, 시영, 호영 4명의 동생 그리고 노비까지 포함한 60명의 가솔을 거느리고 서간도로 집단 망명했다.

당시 6형제는 국내 모든 재산을 처분해 현 화폐가치로 환산했을 때 6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거액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마련했고, 이 자금의 대부분은 경기도 양주를 근거지로 한 만석꾼 집안의 양자였던 이 선생의 토지 매각 대금이었다.

이 선생은 형제들과 망명 이후 만주 일대에 낮에는 농사 짓고 밤에는 공부하는 조선인 생활공동체 경학사(耕學社)와 신흥무관학교 전신인 신흥강습소 설립에 기여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신흥무관한교 초기 신흥강습소를 신흥학교로 교명을 바꾼 뒤 한 때 교장을 맡기도 했다.

그동안 이 선생의 직계후손을 찾지 못했던 것은 장남이자 독립운동가인 규준이 30대 초반이었던 1928년 요절한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흩어져 살게 된 그의 세 딸 중 첫째 온숙, 둘째 숙온은 중국에서 살다 한국으로 돌아왔으며, 셋째 우숙은 대만에서 현지 장교와 결혼해 정착했다.

이석영 선생의 첫째 손녀 이온숙의 1929년 중국 상하이 결혼식 사진. 당시 주례는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뒷줄 가운데 안경 쓴 이)이 맡았다.(자료 사진=국가보훈처 제공)
이석영 선생의 첫째 손녀 이온숙의 1929년 중국 상하이 결혼식 사진. 당시 주례는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뒷줄 가운데 안경 쓴 이)이 맡았다.(자료 사진=국가보훈처 제공)

이 선생은 일제에 의해 일본에 저항하는 한국인을 지칭하는 이른바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낙인 찍혀 오랫동안 지명수배돼 유랑 생활을 거듭하다 1934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이 선생에게 독립운동의 공을 기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장남에게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각각 추서했다.

이 선생과 장남의 서훈은 이번에 후손이 확인돼 30여년만에 유족 품에 안기게 됐다.

이 서훈은 그동안 유족을 찾지못해 6형제의 넷째인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이 대리 수훈해 보관해왔다.

이 선생의 6형제 중 광복 후 유일한 생존자로 귀국했던 다섯째 이시영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초대 부통령을 역임했고, 신흥무관학교 후신이자 현 경희대 전신인 신흥대학 설립자이기도 하다.

보훈처는 “앞으로도 정부 주도의 발굴‧보상과 포상을 받지 못한 독립유공자 후손찾기 등을 통해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분들을 끝까지 기억하는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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