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신문=한상현 전문기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을 집단 살해했다며 전쟁 범죄에 대한 국제 재판 회부를 요구했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처음 나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화상 연설을 통해 러시아가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며 우크라이나의 부차, 이르핀, 디메르카, 마리우폴 등지에서 발견된 피를 흘리거나 불에 타서 훼손된 민간인 시신들을 찍은 짧은 영상을 공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 영상에 담긴 어린이의 모습도 보여주며 이런 결과를 남긴 러시아의 행위에 대해 “IS(이슬람국가)를 비롯한 테러리스트들의 행동과 다를 바 없다”며 “그들은 고의로 아무나 죽이고, 온 가족을 몰살했으며, 시신을 불태웠다”고 규탄했다.
아울러 “여성들은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다”며 “러시아 군인들은 단지 그들의 즐거움을 위해 민간인들을 살해했다”고 분노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어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을 우크라이나가 조작하고 꾸며낸 것이라는 러시아 측 주장에 대해 “부차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보여주는 위성사진들이 있다”며 “러시아군 퇴각 전에 이미 민간인 시신들이 거리에 방치돼 있었다”고 반박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같은 위성 사진들을 들어 “결정적인 증거”라며 “러시아의 전쟁범죄에 대해 완전하고 투명한 조사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또 과거 나치 전범들의 뉘른베르크 재판을 언급하며 “러시아군과 명령을 내린 자들이 전쟁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며 “세계의 다른 잠재적인 전범들에게 인륜의 원칙을 어길 경우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여 달라”고 호소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를 가리켜 “안보리 거부권을 죽음의 권리로 바꿔 사용하는 나라”라며 “지정학적·경제적 영향력과 관계 없이 국제법 위반 행위는 처벌받는 정의를 세워달라”고 안보리 퇴출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러시아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에 대해 “세계 안보의 구조를 허물고, 그들(러시아)이 처벌받지 않고 모든 것을 파괴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라며 “유엔을 닫을 준비가 됐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대답은 ‘노(No·아니다)”라며 러시아를 상대로 “당장 행동에 나서 유엔 헌장을 회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 말미에서 “안보리가 보장해야 할 안전은 어디 있나, 평화는 어디 있나, 유엔이 보장해야 한 안전은 무엇인가”라고 거듭 반문하며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에 나서달라고 호소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같은 연설이 끝나자 주요 국가 대사들은 박수를 치며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부차에서 살해된 민간인들의 무시무시한 사진들을 잊을 수 없다”며 “실질적인 책임 추궁을 보장할 수 있는 독립 조사를 즉각 요구한다”고 젤렌스키 대통령의 연설에 동조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젤렌스키 대통령 연설 직후 “러시아의 침략과 만행에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견해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러시아는 인권을 담당할 자격이 없다며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 자격을 박탈하려면 193개 유엔 회원국 중 3분의 2 이상 곧 129개국 이상이 찬성해야 가능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민간인 집단학살을 자행했다는 국제 사회 주장에 대해 “우크라이나가 현장을 연출한 것”이라며 ‘조작’이라고 부인했다.
바실리 네벤쟈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같은 날(현지시간)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부차 민간인 집단학살 의혹을 거론하며 이같이 항변했으나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네벤쟈 대사는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군을 살인자와 성범죄자로 묘사했다며 “반러시아 히스테리를 부채질하고 있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비열한 짓”이라고 책임을 돌렸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서 “러시아가 통제하고 있는 동안 (주민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휴대전화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마을을 떠나는 것이 허용됐다”는 주장도 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도 이날(5일) 브리핑에서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모든 비난은 근거가 없다”며 “잘 연출되고 비극적인 쇼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러시아가 부차 민간인 학살 의혹에 대해 입장을 설명했다”며 “하지만 서방국가들은 눈과 귀를 막고 들으려 하지 않고 있다”고 피해갔다.
중국은 부차 사건의 원인 검증이 먼저라며 러시아에 대한 비난 자제를 요구해 두둔하는 반응을 보였다.
장쥔 유엔 주재 중국 대사는 이날(5일) 안보리 회의에서 “부차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의 영상과 기사는 아주 끔찍하다”인정면서도 “사건의 전후 상황과 정확한 사건의 원인에 대한 검증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사실에 근거한 비판만 가능하다”며 러시아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비난 자제를 요구했다.
장 대사는 이어 “국제사회의 (대 러시아)제재는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뿐”이라며 미국과 유럽 등 서방국가들이 러시아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