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륙을 준비 중인 F-15K 전투기. (사진=공군 제공)
이륙을 준비 중인 F-15K 전투기. (사진=공군 제공)

[국방신문=송국진 기자] 공군기지나 군 사격장 등 군부대 주변의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중·고교 등 학생들이 군부대 소음으로 인해 심각하게 학습권을 침해받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군부대 지역 주민들의 피해에 대해서만 보상금을 지원하는 ‘군소음보상법’을 개정해 학교 등 교육시설의 교육환경 개선과 함께 학생과 교원의 심리 치료 등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군용 항공기 소음 평가 방식도 웨클(WECPNL) 단위에서 데시벨(dB)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비례대표)은 지난달 29일 소음대책지역 학교의 시설 등 교육 환경 개선과 학생·교원의 심리적 치료 등을 지원토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군용비행장·군사격장 소음방지 및 피해 보상에 관한 법률(군소음보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조 의원은 “대구 K-2 공항 인근에서 20년가량 거주하면서 전투기와 항공기 소음이 얼마나 크고 청력저하, 불면증 등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다”면서 “(군)공항 인근 학교의 학생들은 군용기 소음으로 인해 우울감, 불안감에 시달리고 학습 능력도 저하될 우려가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며 군소음보상법 개정안 대표발의 배경을 밝혔다.

군용기 소음으로 인해 학생들이 심각한 피해를 받고 있고 소음대책지역 내 다수의 학교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대한 소음피해 지원 근거가 없어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조 의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15개 공항(민·군 겸용 8개 포함)과 48개 군용비행장으로부터 소음피해 민원이 접수된 학교는 전국 179개교에 달한다.

특히 민·군 겸용 8개 공항 가운데 수원이나 광주, 대구 세 군데 공항은 도심지 근처에 있어 피해가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 환경소음진동연구센터에서 실시한 ‘수원 공군비행장 소음 피해지역 학생들의 학습능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음 피해지역 학생들의 학습능률이 비피해지역 학생들의 30% 수준에 불과하고, 지능지수·공간지각력과 같은 학습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등 학생들의 학습권 피해가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 의원은 “전투기와 항공기 소음으로 인해 학생과 교원이 심각한 정신적·신체적 피해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대책도 없이 방치돼 있는 실정”이라면서 “이번 법안 발의를 계기로 소음으로부터 학생들의 학습권이 보장되고 교육환경이 개선될 수 있기를 바라며,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비례대표) 주최로 6월 30일 국회에서 개최된 ‘공항 주변 아이들 학습권 보장을 위한 환경개선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군 공항 소음과 학습권 보장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조명희 의원실 제공)
국민의힘 조명희 의원(비례대표) 주최로 6월 30일 국회에서 개최된 ‘공항 주변 아이들 학습권 보장을 위한 환경개선 토론회’에서 토론자들이 군 공항 소음과 학습권 보장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조명희 의원실 제공)

조 의원 주최로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개최된 ‘공항주변 아이들 학습권 보장을 위한 환경개선 토론회’에서도 전문가들은 군부대 주변 학생들의 학습권 보호를 위한 대책 마련의 절실함을 호소했다.

박태호 한국환경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특히 대구는 출력도 높고 개체가 큰, ‘전폭기’라고 부르는 강력한 소음을 가진 군용 비행기들이 뜨다 보니 큰 피해를 당하는 지역”이라면서 “학교보건법에 따른다면 소음피해 때문에 교육시설이 있어서는 안 될 지역인데도 시설이 들어선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학교보건법 제3조 제1항 제3호는 ‘교사 내의 소음은 55데시벨(dB) 이하로 할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박 위원의 설명에 따르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중·고교를 모두 합쳐 대구공항 활주로 기준 직선거리 3km 이내에 총 202개의 교육시설이 위치해 있다.

박 위원은 “군소음보상법이 지금도 있지만 거기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상을 다루고 있지, 학교에 대한 보상은 빠져 있다”면서 “경기도는 군소음보상법 보상 범위 밖에 있는 학교 지원을 경기도교육청에서 하겠다고 조례를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선희 경기도교육청 교육환경개선과 사무관은 “민간 항공기 소음은 명백한 지원 기준이 마련돼 있는데, 군소음보상법에는 지원대상에서 학교가 빠져 있다”면서 군소음보상법의 지원 근거 마련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사무관은 “이중창, 냉난방 장비 등 시설 개선 지원 외에도 소음에 노출된 학생과 교직원의 건강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사와 연구를 바탕으로 포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민간 항공기 소음피해와 군 항공기 소음피해는 관할과 적용 범위가 다르다.

국토교통부가 관할하는 ‘공항소음 방지 및 소음대책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은 민간 항공기 소음 피해를 입은 학교를 대상으로 방음 시설, 하절기 전기 요금, 장학생 선발 등을 지원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가 관할하는 ‘군용비행장·군사격장 소음방지 및 피해 보상에 관한 법률(군소음보상법)’에는 보상 범위에 해당 지역 주민들의 피해에 대해서만 보상금을 지원한다고 돼 있다.

양승대 군소음피해국민연대 상임대표는 “국방부와 국토교통부, 교육부가 얽힌 이 구도에서 아이들의 학습권 측면에서 본다면 사실상 교육부는 피해자 입장 아니냐, 교육부가 조사한 결과를 가지고 먼저 나서야 한다”며 구조적인 군공항 소음 문제를 지적했다.

양 대표는 “군용 항공기 소음 평가 단위도 웨클(WECPNL)이 아닌 데시벨(dB)로 바꿔야 한다”며 “웨클로 측정하면 실제로 소음 평가 기준에 들어맞더라도 수업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웨클은 단순히 소리 크기를 나타내는 단위인 데시벨과 달리 시간대에 따라서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항공기의 소리가 조금씩 커져 최고음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작아지는 특성을 고려한 것으로, 주변이 시끄러운 낮 시간대와 조용한 밤 시간대에 따라 가중치를 다르게 적용한다.

국토교통부는 기존 웨클 방식의 항공기 소음 측정에서 주민 체감도가 높지 않다는 이유로 오는 2023년부터 민간공항 항공기 소음 측정 단위를 웨클에서 데시벨로 변경키로 했다.

김유미 대구안일초등학교 학부모 운영위원장은 “시청각 수업이나 실시간 온라인 수업에서는 비행기 이륙으로 한번 흐름을 놓치면 다시 따라가기도 어렵다”면서 “심하면 이중창을 닫아도 수업을 할 수 없고, 전투기가 연속으로 비행할 때면 한두 시간은 수업을 못하고 지나갈 때도 많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소리에 예민한 아이들은 전투기가 이륙할 때 귀를 막고 멈춰 서서 소리에 대한 공포감을 느끼고, 다른 지역에서 진학해 온 아이들은 적응하기 매우 어려워하기도 한다”면서 “교육부는 소음 지역에 있는 학교마다 교실과 실외 소음도를 측정하고 연간 수업 중단 시간 등을 계량화해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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