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신문=한상현 전문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안한 비핵화 로드맵 ‘담대한 구상’에 대해 북한이 나흘만인 19일 내놓은 첫 공식 반응은 ‘어리석음의 극치’라는 조롱을 동반한 거부였다.
또 윤 대통령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며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북한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로 이날자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실린 “허망한 꿈을 꾸지 말라”는 제목의 담화를 통해 “윤석열의 담대한 구상이라는 것은 검푸른 대양을 말려 뽕밭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만큼이나 실현과 동떨어진 어리석음의 극치”라며 ”우리는 절대로 상대해주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밝혔다.
북한은 “앞으로 또 무슨 요란한 구상을 해가지고 문을 두드리겠는지는 모르겠다”며 “‘북이 비핵화 조치를 취한다면’이라는 가정부터가 잘못된 전제라는 것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앞으로도 비핵화에 나설 의지가 없다는 뜻을 드러냈다.
아울러 “세상에는 흥정할 것이 따로 있는 법”이라며 “우리의 국체인 핵을 경제협력과 같은 물건 짝과 바꾸어보겠다는 발상이 윤석열의 푸르청청한 꿈이고 희망이고 구상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천진스럽고 아직은 어리기는 어리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북한은 ‘담대한 구상’에 대해 “새로운 것이 아니라 10여 년 전 이명박 역도가 내들었다가 세인의 주목은 커녕 동족 대결의 산물로 버림받은 ‘비핵, 개방, 3000’의 복사판에 불과하다”고 평가하고 “역사의 오물통에 처박힌 대북정책을 옮겨 베끼고 ‘담대하다’는 표현까지 붙인 것은 바보스럽다”고 깎아내렸다.
그러면서 ‘담대한 구상’을 두고 “우리더러 격에 맞지도 않고 주제넘게 핵 개발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비핵화로 전환한다면 그 무슨 경제와 민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과감하고 포괄적인 담대한 구상’을 제안한다는 황당무계한 말을 줄줄 읽어댄 것”이라며 “가장 역스러운(역겨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이와 함께 남한에 대해 “경내에 아직도 더러운 오물들을 계속 들여보내며 우리의 안전 환경을 엄중히 침해하는 악한들”이라며 “북 주민들에 대한 식량 공급과 의료지원 따위를 줴쳐대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민의 격렬한 증오와 분격을 더욱 무섭게 폭발시킬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이 언급한 ‘더러운 오물’은 남한에서 탈북민 단체들 중심으로 북한으로 날려 보낸 선전 전단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북한은 지난 6월 30일 군사분계선에 인접한 강원도 금강군 이포리 지역의 병영과 야산에서 ‘색다른 물건과 접촉’한 군인 김 아무개(18)와 유치원생 위 아무개(5)가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았다고 발표한 데 이어 지난 10일 김여정 부부장은 평양에서 열린 ‘전국비상방역총화회의’에서 행한 ‘토론’(연설)을 통해 북한의 코로나19 최초 발병과 관련 “전선 가까운 지역이 초기 발생지”라고 주장했다.
김 부부장은 “우리가 색다른 물건짝들을 악성 비루스 유입의 매개물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며 “이번에 우리가 겪은 국난은 명백히 세계적인 보건 위기를 기화로 우리 국가를 압살하려는 적들의 반공화국 대결 광증이 초래한 것”이라고 남한 탓으로 돌렸다.
북한은 이어 “정녕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인물이 저 윤 아무개밖에 없었는가”라며 윤 대통령을 대통령 직함도 붙이지 않은 채 여러 차례 지목해 저열한 험담을 늘어놓았다.
북한은 윤 대통령을 향해 “소위 대통령이라는 자가 나서서 한다는 마디마디의 그 엉망 같은 말들을 듣고 앉아있자니 참으로 그쪽 동네 세상이 신기해 보일 따름”이라며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라는 말도 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북한을 향해 비핵화 의지를 보이면 초기 단계부터 단계별로 경제 지원 등에 나서겠다는 요지의 ‘담대한 구상’을 밝혔다.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은 구체적으로 ‘북한에 대한 대규모 식량 공급 프로그램’, ‘발전과 송배전 인프라 지원’, ‘국제 교역을 위한 항만과 공항의 현대화 프로젝트’, ‘농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기술 지원 프로그램’, ‘병원과 의료 인프라의 현대화 지원’, ‘국제투자 및 금융 지원 프로그램’ 등이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와 관련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 협상에 나올 경우, 초기 협상 과정에서부터 경제 지원 조치를 적극적으로 강구한다는 점에서 과감한 제안”이라며 “여기에는 광물, 모래, 희토류와 같은 북한의 지하자원과 연계한 일명 한반도 자원 식량 교환 프로그램이라든지, 보건·의료·식수·위생·산림 분야 민생 개선 시범사업 등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김 차장은 “포괄적 합의가 도출될 경우 (핵의) 동결·신고·사찰·폐기로 나아가는 단계적 비핵화 조치에 상응해 남북경제협력을 본격화하기 위한 ‘남북공동경제발전위원회’를 설립해 가동할 것”이라며 “북한 당국과 함께 비핵화 방안과 남북공동경제발전 계획을 구체화해 나가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을 유도할 것”이라고 중장기 전망까지 내놨다.
그러면서 “북한의 호응을 고대한다”고 말했으나 김 부부장의 이날 담화는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