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신문=윤석진 기자] 제10차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핵무기 공격을 위협하고 있는 러시아의 반대로 최종 선언문 채택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NPT 평가회의가 지난 22일(현지시간)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하고, 북한은 어떤 추가 핵실험도 단행해서는 안되며, 핵보유국 지위도 얻을 수 없다는 내용이 포함돼 작성된 36쪽에 달하는 최종선언문 초안은 그대로 사장됐다.
지난 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시작된 NTP 평가회의는 폐막일인 26일(현지시간) 회의 시간을 연장해가면서까지 선언문 채택을 위한 논의를 계속했으나 러시아가 끝까지 동의하지 않아 결국 합의가 무산됐다고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이번 NPT평가회의 의장국인 아르헨티나의 구스타보 슬라우비넨 의장은 최종선언문 초안에 대해 “세계가 분쟁 그리고 핵전쟁 가능성의 증가로 점점 고통받고 있다”며 “이 시점에 진전된 결과를 얻길 기대하는 당사국들의 다양한 관점과 기대치를 담으려 애쓴 결과물이었다”고 아쉬움을 표명했다.
27일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대표단이 전체 회의가 열리기 불과 4시간 전인 26일 오전 11시쯤 “중요 변경이 이뤄지지 않는 한 우리는 합의할 수 없다”는 뜻을 슬라우비넨 의장에게 밝혔다.
러시아가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최종 초안에 담긴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언급 부분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22일 공개된 최종 선언문 초안에는 자포리자 원전과 인근 지역에서 군사활동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또 “우크라이나가 이 원전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원전 내 핵물질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식하면서 핵물질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걸 막으려는 원자력기구의 노력을 지지한다” “결정권 있는 우크라이나 기관의 (원전) 통제를 보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AP통신은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자포리자 원전 관련 논의 후 최종선언문 채택에 반대했다고 전했다.
이고리 비시네베츠키 러시아 외교부 비확산 및 군비통제국 부국장은 “안타깝게도 이 문서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지 못했다”며 러시아 외에 많은 나라가 동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NPT 평가회의는 최종선언문 채택에 191개 회원국 만장일치제여서 1개국만 반대해도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프랑스와 인도네시아는 각각 유럽연합(EU) 등 56개국, ‘비동맹 운동’ 회원국 120개국을 대표해 최종선언문을 채택하지 못한 결과에 대해 실망했다는 입장을 대변했다.
애덤 셰인먼 미국 비확산 특별대표는 “오늘 합의를 이루지 못한 건 러시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셰인먼 대표는 “러시아가 막판에 수정하려던 사항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며 “우크라이나를 지도에서 없애려는 명백한 의도를 가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러시아를 비판했다.
베아트리스 핀 ‘핵무기 폐기 국제 운동’(ICAN) 사무총장은 영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최종 초안의 핵군축 관련 부분은 미국·러시아·프랑스·영국·중국 등 5대 공식 핵보유국들에 의해 이미 약화된 상태였다며 “핵보유국들은 아무 것도 이뤄내지 못함으로써 아주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핀 사무총장은 아울러 “어느 순간에 가면 핵무기가 없는 나라들은 이 조약이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핵무기금지조약’(TPNW)에 더 많은 나라들이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월 정식 발효된 TPNW은 지금까지 66개국이 비준했거나 가입했다.
5대 공식 핵보유국과 북한 등 핵보유 추정국, 한국 등 핵우산에 포함된 나라는 이 조약에 아직 참여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2020년 개최하려다 코로나19 팬데믹 등의 영향으로 2년 연기된 끝에 열린 이번 회의에서도 2015년의 9차 회의에 이어 결론 도출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핵군축은 한 발짝도 진전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