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신문=윤석진 기자] 3년 만에 열려 기대를 모았던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첫 한중 정상회담이 30분을 못채운 짧은 시간 열린데다 북 핵·미사일 등 주요 의제에 대해 기존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끝났다.
대통령실은 15일(현지시간) G20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는 인도네시아 발리 한 호텔에서 열린 윤 대통령과 시 주석의 25분 한중 정상회담이 끝난 뒤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한중관계 발전 방향, 한반도 문제, 역내·글로벌 정세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양 정상은 한중 양국의 교류와 협력이 1992년 수교 이래 비약적으로 성장해 왔음을 평가하고 “수교 30주년을 맞아 양국 관계를 상호 존중과 호혜, 공동이익에 입각하여 더욱 성숙하게 발전시켜 나가자는 데 입장을 같이했다”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담에서 보편적 가치와 규범에 기반하여 국제사회의 자유·평화·번영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외교 목표라며 동아시아와 국제사회의 자유·평화·번영을 증진하는 데 중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만큼 한중 양국이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시 주석은 이에 대해 한중 간 전략적 소통 강화와 정치적 신뢰 증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발표 자료에서 전했다.
한국의 요청에 호응하기에는 현재 한중 관계에 거리가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날 회담에서 한중이 입장 차이를 확연히 드러낸 것은 우리가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인 북 핵·미사일 문제였다.
윤 대통령은 최근 북한이 전례 없는 빈도로 도발을 지속하며 핵·미사일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인접국으로서 중국이 더욱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역할을 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이에 대해 한중 양국이 한반도 문제에 공동이익을 가진다며 평화를 수호해야 하고, 한국이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역할을 요청하기 전에 한국이 먼저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라는 전형적인 ‘공 떠넘기기’ 식 발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시 주석은 윤 정부가 북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북정책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에 대해서도 북한의 의향이 관건이라며 먼저 “북한이 호응해 온다면”이라는 전제를 달아 “담대한 구상이 잘 이행되도록 적극 지지하고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에 대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를 통해 “어리석음의 극치”라며 “이명박 정부 ‘비핵·개방 3000’의 복사판에 불과하다”고 깎아내리며 공식적인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시 주석은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현재로선 지지나 협력을 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어서 당분간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힘들게 됐다.
이에 따라 북한이 예상되는 7차 핵실험을 강행하더라도 유엔 안보리 차원의 추가 제재는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반대가 예상돼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2017년 9월 6차 핵실험 직후 제재에 동참한 적이 있으나 그 이후 북한 도발에 따른 추가 제재에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들어 줄곧 반대표를 던졌다.
중국은 올 5월에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따른 추가제재안을 유엔 안보리에서 논의했지만 표결에서 러시아와 함께 거부권을 행사해 무위로 돌아갔었다.
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이 고위급 대화의 정례화 추진 등 양국 교류의 폭을 넓히는 데 합의하는 성과를 거뒀다.
시 주석은 나아가 “양국 간 1.5트랙 대화도 구축하자”고 제안해 교류 확대에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1.5트랙’은 양국 정부 뿐 아니라 민간도 참여하는 소통 채널을 가리킨다.
앞서 외교부가 지난 7월 윤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면서 내놓은 기존의 한중 국장급 외교·국방(2+2) 대화를 차관급으로 격상시켜 새롭게 추진하겠다는 계획이 탄력을 받을 여지가 생겼다.
기존의 한중 국장급 외교·국방(2+2) 대화는 한때 가동되다가 지난 2015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국 배치 여파로 그해 1월 이후 중단된 바 있다.
또 양국이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하기로 한 것도 또 다른 성과로 꼽힌다.
한국이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가입하고,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예비회의에 참석하는 등 미국 주도의 대중국 압박에 동참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중 경제협력의 돌파구가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시 주석이 자유무역질서 유지와 글로벌 공급망 안전 보장 필요성을 거론하며 경제협력을 정치화하고 안보화하는 데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양국 경제협력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대통령실은 또 시 주석이 그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국을 방문할 수 없었지만 코로나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윤 대통령의 방한 초청에 기쁘게 응할 것이라고 하고, 상호 편리한 시기에 윤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주기를 희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측 발표 자료에서는 관련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번 회담은 예정된 시각을 조금 넘긴 오후 5시 11분쯤 시작해 약 25분간 진행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