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1연평해전 승전 25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해군 제공)
14일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1연평해전 승전 25주년 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해군 제공)

[국방신문=송국진 기자] 15일은 25년 전인 1999년 6월 15일 북방한계선(NLL) 남쪽 연평도 인근에서 발생한 대한민국 해군 함정과 북한 경비정 간 해상 전투에서 우리 해군이 압승을 거둔 날이다.

당일 오전 6시 10분쯤 북한 경비정 4척이 NLL을 넘어 대한민국 영해에 들어오자 우리 해군은 북한의 의도적 도발로 판단해 초계함 2척, 고속정 6척을 즉각 파견해 현장에 투입했다.

약 1시간 반 뒤인 오전 8시 40분쯤 북한의 경비정 3척이 추가로 우리 영해를 침범함으로써 총 7척으로 늘어난 북한 경비정은 철수를 요구하는 우리 해군의 고속정에 충돌을 시도했다.

이에 우리 해군 고속정 6척은 선체끼리 직접 부딪치며 밀어내기 방식으로 북한 경비정들을 NLL 밖으로 쫓아내려 했다.

우리 해군 함정과 북한의 함정들이 밀어내기 싸움을 하는 도중에 북한의 어뢰정 3척이 추가로 가담, 북한 함정 총 10척이 우리 해군 함정 6척과 일촉즉발의 밀어내기 싸움을 벌였다.

이때 북한 경비정이 우리 고속정에 소총과 25㎜ 기관포 사격을 가하는 기습도발을 했고 우리 해군은 북한 함정들에 대해 밀어내기를 계속하면서 40㎜와 76㎜ 기관포 사격으로 맞대응했다. 약 14분간 이어진 우리 해군과 북한 해군의 무력 충돌에서 북한 어뢰정 1척이 침몰했고, 5척의 북한 경비정은 크고 작은 파손을 입었다. 10척의 북한 함정 가운데 멀쩡하게 돌아간 배는 단 4척에 불과했다. 당시 우리 해군은 이 충돌로 최소 30명의 북한군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에 우리 해군은 초계함 1척과 고속정 4척이 일부 파손됐지만, 사망자 없이 고속정 승조원 9명만 비교적 가벼운 부상을 당하는 정도의 미미한 피해에 그쳤다.

이로써 우리 해군이 북한군을 압도적으로 물리치고 승리한 남북간 해상전투로 기록됐다.

우리 군은 당일 해상 전투에서 승리하며 서해 수호에 앞장섰던 해군 유공 장병들을 1계급 특진시켰다. 이는 군 당국이 6·25전쟁과 월남전 이후 단순 교전 성과로 장병들을 특진시킨 첫 사례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날의 서해상 전투를 1999년 7월 3일부터 ‘연평해전’으로 이름을 붙였다. 이후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이 발생함에 따라 6월 15일 전투는 ‘제1연평해전’으로 불리게 됐다.

해군은 1999년 11월 11일 연평도 당섬에 제1연평해전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높이 9.35m의 전승비를 설치했다. 이어 2007년 12월 20일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 영내에도 전승비를 세웠다.

1999년 6월 15일 오전 발생한 제1연평해전 당시 전투 모습. (사진=해군 제공)
1999년 6월 15일 오전 발생한 제1연평해전 당시 전투 모습. (사진=해군 제공)

제1연평해전에서 패퇴한 북한은 3년 뒤인 2002년 6월 29일 NLL 남쪽의 연평도 인근에서 또다시 도발해 우리 해군 함정과 북한 경비정 간에 제2연평해전이 발생했다.

그해 2002한일월드컵이 끝나갈 무렵인 6월 29일 오전 9시 54분부터 NLL을 넘기 시작한 북한 경비정들은 10시 25분 근접차단을 실시하던 우리 해군의 참수리 357호에 대해 집중사격을 가했다.

이에 우리 해군은 참수리 357호와 358호가 대응사격을 개시하고 인근에서 작전 중이던 제천·진해함(PCC)과 참수리급 경비정 4척을 추가 투입해 격파사격을 실시했다.
오전 10시 56분까지 31분간 남북 해군 간 교전이 벌어진 뒤 북한의 SO·1급 초계정 등산곶 684호가 반파된 채 북으로 퇴각함으로써 전투는 종료되었다. 북한은 약 30여 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당시 우리 해군 당국은 추정했다.

그러나 북한 경비정으로부터 기습 공격을 받은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가 침몰하고 정장인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한상국 상사, 조천형·황도현·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를 내는 등 우리 해군의 피해가 컸다.

정부는 2008년 4월 ‘서해교전’으로 불리던 이날 전투를 ‘제2연평해전’으로 명명하고 추모행사도 국가보훈처 주관 아래 정부기념행사로 승격시켰다.

우리 해군은 제1연평해전과 제2연평해전을 계기로 교전규칙을 적극적인 응전 개념으로 수정했다.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 시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밀어내기 작전)·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 5단계 소극적 대응에서 ‘시위기동·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 3단계 즉각 대응으로 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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