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찰스 그린 중령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호주 정규군의 첫 지휘관으로 참전해 대한민국을 구한 참군인의 표상으로, 호주군 참전 장병 가운데 유일한 장교 전사자이다. 찰스 그린 중령과 그의 부인 올윈 그린 여사. (사진=국가보훈부 제공)
고 찰스 그린 중령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호주 정규군의 첫 지휘관으로 참전해 대한민국을 구한 참군인의 표상으로, 호주군 참전 장병 가운데 유일한 장교 전사자이다. 찰스 그린 중령과 그의 부인 올윈 그린 여사. (사진=국가보훈부 제공)

[국방신문=박세정 전문기자]  국방신문은 오는 10월 30~31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개최하는  '6·25 유엔 참전용사 초상화 헌정 및 전시회'에 앞서, 호주군 참전 장교 중 유일하게 전사한 찰스 그린(Charles Green) 중령과 그의 아내 올윈 그린 여사의 숭고한 삶을 조명한다.

이번 전시회에는 찰스 그린 중령의 초상화도 함께 전시돼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참전용사와 그 곁을 끝까지 지킨 부인의 헌신을 기린다.

국방신문은 이번 행사를 통해 국민에게 유엔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널리 알리고, 젊은 세대에게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호주군의 상징, 찰스 그린 중령

찰스 그린 중령은 1920년 호주에서 태어나 2차 세계대전에 이어 한국전쟁에도 참전한 군인으로, 1950년 9월 28일 호주 육군 제3대대의 첫 지휘관으로 한국전선에 투입됐다.

그는 ‘연천전투’, ‘박천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는 유엔(UN)군이 청천강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북진을 거듭하여 10월 29일 ‘정주전투’에서도 연이어 승리를 거두며 아군의 진격을 이끌었다.

그러나 1950년 10월 30일 달천강 주변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을 때 그린중령의 텐트 주위로 북한군 포탄이 날아들었고 날카로운 파편에 복부를 관통당해 불과 30세의 젊은 나이로 전사했다.

그의 공로는 한국과 호주 양국에서 높이 평가돼 2015년 대한민국 국가보훈부는 그를 ‘이달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올윈 여사는 호주 6·25전쟁 참전용사협회 후원과 참전용사 및 유가족들을 위한 봉사활동 등을 통해 한·호주 협력관계에 기여했다. 그린부부의 결혼 사진. (사진=유엔기념공원 제공)
올윈 여사는 호주 6·25전쟁 참전용사협회 후원과 참전용사 및 유가족들을 위한 봉사활동 등을 통해 한·호주 협력관계에 기여했다. 그린부부의 결혼 사진. (사진=유엔기념공원 제공)

남편을 평생 그리워 한 올윈 여사

남편의 전사 후 홀로 남겨진 올윈 그린 여사는 4살짜리 외동딸을 키우며 남편의 희생을 알리고 참전용사 유가족을 위해 헌신했다. 그녀는 1993년 회고록 ‘아직도 그대 이름은 찰리(The Name's Still Charlie)'를 출간해 호주 전쟁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고, 2006년에는 호주정부 국민훈장을 수훈했다.

올윈 여사는 “남편 곁에 잠들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으며, 2019년 향년 96세로 별세한 후 2023년 마침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합장되어 남편과 영원히 함께하게 되었다.

유엔기념공원에서 엄수된 고(故) 올윈 그린 여사의 부부 합동 안장식에서 외동딸인 안시아씨가 올윈 그린 여사의 유해를 안장하고 있다. (사진=유엔기념공원 제공)
유엔기념공원에서 엄수된 고(故) 올윈 그린 여사의 부부 합동 안장식에서 외동딸인 안시아씨가 올윈 그린 여사의 유해를 안장하고 있다. (사진=유엔기념공원 제공)

초상화 전시 및 헌정을 통해 숭고한 뜻 기려

이번 전시회에서 공개될 찰스 그린 중령의 초상화는 단순한 한 장의 그림이 아니라, 호주군의 희생과 부부의 사랑, 그리고 자유를 위한 인류 공동의 연대를 상징한다.

특히 올윈 여사가 제안하여 6·25전쟁 당시 호주군 최대 격전지였던 가평의 지형과 6·25전쟁 호주 전사자의 이름 등을 손바느질로 누벼 만든 대형 ‘가평 퀼트’ 작품이 지난 2016년부터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전시되고 있듯이, 이번 찰스 그린 중령의 초사화 전시회는 양국의 우정을 잇는 새로운 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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