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당 총비서)은 지난해 초부터 최근까지 1년 반 이상을 코로나19 대응에 ‘올인’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장기화되는 국면에서 홍수를 비롯한 자연재해와 함께 코로나19까지 겹쳐 이른바 3중고(三重苦)를 겪고 있는 김 위원장에게 어쩌면 지난해와 올해는 집권 10년을 앞두고 가장 힘든 시기가 될지도 모른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정체국면이 지속되던 2019년 말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대미 ‘정면돌파전’을 선언하며 승부수를 띄웠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를 만나 국정 운영에 심각한 차질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통치방식인 공개적 대외활동은 2019년 대비 50% 수준으로 위축되었고, 대외무역은 80% 이상 감소했다. 식량을 비롯한 ‘인민경제’도 스스로 실패를 자인할 만큼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래 가장 힘든 상황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환율과 물가 등 경제지표들의 변동성이 심화됨으로써 경제회복의 전망도 어둡게 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코로나19 사태 발생 초기부터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으로 관측된다. 초기 단계에서 빠르고 강력한 대응조치를 해왔다.
중국과 외교적 부담을 감수하면서 대중 국경을 맞대고 있는 14개국 가운데 가장 먼저 국경을 폐쇄했다.
2020년 1월 30일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적공중보건비상사태(PHEIC)를 선포한 당일 위생방역체계를 국가비상방역체계로 전환했다.
국가비상방역체계 선포 한 달 후인 2월 29일에는 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직접 주재하면서 코로나19 정국의 전면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코로나19 대응 활동을 “단순한 방역사업이 아니라 인민보위의 중대한 국가사업”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방역에 실패할 경우 “상상할 수도 만회할 수도 없는 치명적인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태풍과 폭우로 큰 피해를 당했을 때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했던 과거와 달리 국경을 더욱 철통같이 닫을 지시할 정도로 코로나19 방역을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했다.
코로나19 사태를 단순한 전염병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 차원의 위협으로 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코로나19 사태를 애민지도자상 부각 및 위기관리 리더십 선전에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10일 당 창건 75돌 기념 연설에서 코로나19와 자연재해 극복을 언급하면서 이례적으로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18차례 반복하고 “면목이 없다”, “하늘 같고 바다 같은 우리 인민”등 감성적 표현으로 인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부각했다.
또한, 코로나19 방역 성공을 주장하면서 자신의 위기관리 리더십을 직간접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북한이 안정된 방역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당 중앙의 선견지명적 ‘령도력’과 전 인민의 자각적 일치성”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였으며, 당 창건 연설에서는 “세상을 무섭게 휩쓸고 있는 몹쓸 전염병으로부터 이 나라 모든 인민들을 끝끝내 지켜냈다”며 업적으로 부각했다.
최근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매체들도 코로나19 방역을 들어 김 위원장의 위기관리 리더십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 위원장의 언급 내용을 인용해 코로나19 차단을 “선견지명적 령도력”으로 찬양하는 가운데 “인민에 대한 불같은 사랑”, “공세적이며 즉시적인 강력한 조치로 세계적 위기로부터 인민의 생명안전 수호” “인민의 운명을 지켜주신 원수님” 등으로 선전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코로나19 사태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중대한 사태’였다.
첫째, 대북 제재 장기화로 인민 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전염병까지 유입된다면 집권 10년을 앞둔 시점에서 체제안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존재했다.
둘째, 각국 지도자들이 초기 대응 잘못으로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코로나19 대응 여하에 따라 위기관리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다.
셋째,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미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상황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사태를 대미 전략추진에 큰 차질을 초래할 수 있는 복병(伏兵)으로 본 것이다.
이러한 기본 인식하에 김 위원장은 사태 발생 초기부터 정책 실패의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전면에 나서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했으며, 그 결과 어느 정도 방역에는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현재와 같은 국경봉쇄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북한 경제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가 문제로 남아있다.
북한은 언제까지 국경을 닫고 있을 것인가? 북한이 국경을 개방하는 데는 크게 세 가지 변수를 고려할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는,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 전개 상황이다. 북한은 지난해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선포하면서 전 지구적으로 코로나 사태가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비상방역체계를 가동할 것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이어 변이 바이러스 확산세가 지속될 경우 봉쇄조치 완화를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둘째는, 중국의 상황이다. 북한 대외무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정세는 대단히 중요한 고려요인이다. 중국 내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고 당국 차원에서 ‘완전종식’을 선언한다면 양국 간 협의를 통해 국경개방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북한 인민경제의 어려움이다. 현재까지는 비상방역을 경제회생에 우선하는 정책을 취해왔지만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생필품이나 원자재 등 인민경제 가동에 꼭 필요한 것부터 부분적으로 교류를 재개함으로써 경제에 숨통을 트고자 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하지만 현재의 모든 상황과 여건을 감안할 때 북한으로서는 경제난 심화에도 불구하고 당분간은 국경개방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에 김정은 위원장의 고민이 있다. 인민경제 회복이 절실하지만 북한의 열악한 보건 환경과 의료기술 수준으로 볼 때 쉽게 국경을 개방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리더십이 또한번의 어려운 시험대에 올라 있다.
<김호홍 수석연구위원 약력>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기획실장, 신안보연구실장
-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담 대표
- 국가정보원 대북전략단장
- 청와대 NSC 정보비서관실, 안보전략비서관실 국장
- 행정고시 31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