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당총비서)은 내년이면 실질적으로 집권한 지 10년째를 맞이하게 된다.
2011년 겨울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권좌에 오른 김 위원장에게 국제사회는 기대와 우려의 시선을 교차했다. 후계구도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난무할 정도로 김정은의 존재는 베일에 싸여 있었으며, 그의 불투명한 이력과 검증되지 않은 리더십 때문에 호사가들은 물론이고 강호의 전문가들조차 북한의 앞날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유학경험을 가진 젊은 지도자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자유롭고 개방된 문명국가의 혜택을 누리며 어린 시절을 보낸 김정은이 폐쇄국가의 우물 안 개구리식 독재자가 아니라 발전된 북한의 미래를 꿈꾸며 과감한 개혁과 개방 정책을 추진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서 좀 더 지켜보자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집권 10년을 앞둔 현재까지 통치 실적을 들여다보면 갑작스레 권좌에 오른 젊은 지도자에 대한 당시의 우려가 기우(杞憂)가 아니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집권 이후 5년여 동안 수차례의 핵실험과 소나기식 미사일 발사 시험을 통해 2017년 말 ’핵무력 완성‘을 선언함으로써 동북아와 한반도 안보 정세 불안을 더욱 가중했을 뿐만 아니라, 무오류의 최고 영도자로서 체면을 구기면서 경제발전 계획의 실패를 인정하고 심각한 식량 사정을 토로할 만큼 인민경제가 악화돼 있기 때문이다.
이제 앞으로가 문제다. 김 위원장에게 현재의 고난과 위기는 자신의 리더십이 정책성과를 통해 성공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인지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집권 이후 크고 작은 많은 위기를 맞이하였고 나름대로 잘 극복해 왔으며 이제 세 번째의 위기 앞에서 중요한 결단과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위기는 집권 초기 불안정한 권력 기반이었다.
급조된 세습체계의 불안정 상황을 조기에 수습하고 안정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 통치기반을 다지는 것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집권 초기 김 위원장은 취약한 정통성과 일천한 국정 경험 보완을 위해 부득이 고모부인 장성택과 군사통 리영호 등 원로들(이른바 운구차 8인방)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과정에서 일정 부분 리더십에 흔들림이 있었던 것으로 관측되었다.
그러나 최고실세로 자신의 권위를 위협하던 장성택과 잠재적 경쟁자인 이복형 김정남을 무참히 제거하고 헌법 개정과 조직개편, 세대교체 등 다양한 조치들을 통해 당·정·군을 완전 장악함으로써 안정적 통치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였다.
두 번째 위기는 트럼프와의 맞대결이었다.
대미 직접 협상을 통해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이를 토대로 사회주의 경제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전략은 선대(先代)로부터 해결하지 못한 숙원사업이었다. 이를 위해 김 위원장은 2013년 3월 이른바 ’경제-핵 병진노선‘을 천명, 핵 보유를 기반으로 미국과 담판을 벌여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대외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구상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한 방책으로 2017년 말 서둘러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였으며, 자칭 ‘핵보유국’의 지위를 가지고 서울을 거쳐 워싱턴으로 향하겠다는 이른바 ‘통남통미(通南通美)’ 전략을 시도하였다.
이러한 김 위원장의 전략과 구상은 남한의 진보정권 등장 및 트럼프 대통령의 자기 과시적 성향과 맞물리면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을 세 차례 만나고 남·북, 북·중, 북·러 정상회담을 연쇄적으로 개최, 국제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상국가 지도자로서 위상 제고에 성과를 거둔 것이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의 결렬로 비핵화 협상이 교착국면에 빠지고 자신이 추구했던 제재완화를 끌어내지 못함으로써 결국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세 번째 위기는 신안보(emerging security) 위협의 도전이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그해 겨울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대미협상에 연연하지 않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였다.
조성된 국면이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판단 아래 ‘경제전선’을 주 전선으로 하는 자력갱생을 통해 미국의 정책전환을 압박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구상은 예상치 못한 복병(伏兵)으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2020년 초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정면돌파전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대중 국경을 폐쇄함으로써 그동안 ‘뒷문’ 역할을 해오던 중국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으며, 비상방역으로 주민동원도 어렵게 되었다. 지난 1년 반 동안 지속한 국경봉쇄 장기화는 북한경제와 인민 생활에 심각한 어려움을 조성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단순한 보건이나 질병관리 차원을 넘어 정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새로운 안보적 위협으로 대두되는 것이다. 김 위원장도 코로나19 사태를 ‘사상초유의 세계적 보건위기’로 규정하고 “장기적 봉쇄로 인한 곤란과 애로는 전쟁 상황에 못지않은 시련의 고비”가 되고 있다고 토로하였다.
현재와 같은 상황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결국 ‘정면돌파전’ 전략은 실패하고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위기감이 짙게 깔려있다. 이제 김 위원장은 새롭게 부상(浮上)하고 있는 신안보 위협의 도전과 위기 속에서 어려운 결단을 해야 한다.
김 위원장의 판단과 선택은 향후 북한 주민의 삶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북한 정권의 향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감염병을 비롯한 신안보 이슈는 군사력 중심의 전통안보(traditional security)와 달리 초국경적이고 예측이 어렵다는 특성 때문에 어느 국가이건 혼자 힘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국제사회와 공조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김 위원장에게 뾰족한 대안이 없어 보인다. 김 위원장이 지금의 위기와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핵 무력에 의지하여 체제와 정권을 지키겠다는 비현실적 아집을 버리고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국제규범과 질서의 틀 안에서 대화와 협력을 통해 생존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김호홍 수석연구위원 약력>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기획실장, 신안보연구실장
-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담 대표
- 국가정보원 대북전략단장
- 청와대 NSC 정보비서관실, 안보전략비서관실 국장
- 행정고시 31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