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홍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신안보연구센터장
김호홍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신안보연구센터장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8년 8월경 갑자기 쇼크로 쓰러졌다. 이후 3년여 동안 와병 중 불안정한 통치를 하다가 2011년 겨울 사망하였고, 3대째 세습으로 김정은이 집권하게 되었다.

1980년 6차 당대회에서 후계자로 공식화된 이후 1994년 김일성 사망 시까지 15년 가까이 학습 과정을 거친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권좌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는 김정은 시대 개막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였다. 유학경험을 가진 젊은 지도자라는 점에서 ‘변화’ 가능성을 주목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급조(急造)된 세습 독재자에 대한 걱정과 불안의 시선이 우세하였다.

김정은은 집권 이듬해인 2012년 4월 15일 할아버지 김일성의 탄생 100주기 열병식에서 첫 공개연설을 하였다. 여기서 북한 인민들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하였다. ‘국방력 강화’와 ‘인민경제 회생’이다. 그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민군대를 백방으로 강화하겠다”고 했고, “인민들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할 것”을 공언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2013년 3월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정 운영의 핵심전략으로 ‘핵-경제 병진노선’을 제시하고 여기에 올인하였다. 하지만, 집권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김정은의 통치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초라하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집권 당시 불안한 시선들이 기우(杞憂)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핵 무력 완성 후에 이를 협상의 카드로 활용하여 인민경제 회생의 기회를 잡겠다는 김정은의 구상은 2019년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물거품이 되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새해를 맞아 김일성 전 주석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주요 간부들과 함께 참배하고 있다.(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새해를 맞아 김일성 전 주석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주요 간부들과 함께 참배하고 있다.(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장기화되는 북미 관계 경색국면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인민경제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현실에서 핵·미사일 도발이 지속되고 이것이 ‘먹고사는 문제’ 해결의 발목을 잡는 딜레마 상황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정은의 제1공약인 ‘국방력 강화’는 핵 무력 증강으로 나타났다. 핵 개발에 대한 김정은의 자세는 선대들과 달리 대단히 노골적이다. 할아버지 김일성은 적어도 겉으로는 “의지도 능력도 없다”며 부인하였다. 아버지 김정일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NCND) 모호성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김정은은 2012년 집권하자마자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하였고, 이듬해에는 ‘핵 개발’을 통치노선으로 명시하였다. 2017년 말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발사 성공을 주장하면서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였다. 지난해에는 핵무기를 공격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였다.

북한은 ‘핵 무력 증강’을 김정은 시대 최대 통치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4월 개최한 집권 10년 중앙보고대회에서는 핵 능력 강화를 “역사적 대업 실현”으로 추켜세웠고, 연말 전원회의에서는 “강대무비(强大無比)한 군사력 증강”으로 선전하였다.

그러나, 김정은의 핵 도발은 제2공약인 경제 회생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김정은이 공약한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 전망이 핵 개발의 볼모가 되어 더욱 요원해졌다.

북한의 경제난은 갈수록 더 심화되고 있다. 김정은 집권 초중반 경제성장률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와 비슷한 마이너스(-) 3~4% 수준으로 추락했고, 최근 2020년-2021년에는 마이너스(-) 4.5%까지 더 떨어졌다. 김정은 스스로 경제정책의 실패와 심각한 식량난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여전히 핵·미사일 도발에 매달리고 있다. 집권 10년 동안 110여 차례, 지난 한 해 동안 40회 이상의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였다. 김일성(12회)·김정일(9회) 시대와 비교해 볼 때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이다.

북한이 지난해 12월 31일 미사일 발사 도발을 한 가운데 시민들이 서울역 탑승객 대기실에 설치된 TV 화면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도발 소식을 지켜보고 있다. (국방신문 자료사진=전바울 기자) 
북한이 지난해 12월 31일 미사일 발사 도발을 한 가운데 시민들이 서울역 탑승객 대기실에 설치된 TV 화면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도발 소식을 지켜보고 있다. (국방신문 자료사진=전바울 기자) 

새해에도 첫날부터 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를 발사하는 등 도발적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

2023년 새해 벽두 김정은은 고민에 빠져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핵·미사일 도발을 멈추고 인민경제 회생의 계기를 모색할 것인가 아니면 군사적 위협을 고조시켜 긴장을 조성해 나갈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현재로서는 후자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신년사를 대신한 당 전원회의를 통해 ‘강대강 정면승부의 대적 투쟁 원칙’과 ‘핵탄두 보유량을 기하급수적으로 늘일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신냉전구도 하에서 미국을 더 강하게 압박하면 자신들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을 하는 듯하다. 하지만, 김정은은 도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한미 양국이 긴밀한 공조하에 ’도발-보상-도발‘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공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정은의 ’벼랑 끝 전술‘이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김정은은 자신이 어떠한 선택을 해야 ’인민의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는 집권 초기 공약을 이행할 수 있을 것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김호홍 신안보연구센터장 약력>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신안보연구센터장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기획실장, 신안보연구실장
- 가천대학교 겸임교수
-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담 대표
- 국가정보원 대북전략단장
- 청와대 NSC 정보비서관실, 안보전략비서관실 국장
- 행정고시 3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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