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신문=한상현 전문기자] 학군장교(ROTC) 등 군 초급간부 지원율이 뚝 떨어지고 미래 한국군의 중추가 될 부사관 모집이 정원 미달하는 것은 낮은 급여와 전역 후 재취업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병사들은 전역 후 취업이나 학업 등 사회 복귀에 어려움을 겪고 경쟁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군 복무는 일방적 희생’으로 생각하며 병영 생활을 하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국방부가 급변하는 안보환경, 기술경쟁·인구절벽 등 도전요인을 극복하고 국방혁신 4.0을 통한 ‘과학기술 강군’ 목표를 달성하려면 인재양성과 전역 후 취업 보장 등 군의 인적 자원 관리와 병역제도 전반에 대한 재설계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군을 첨단과학기술군으로 바꾸려면 정보통신(IT) 분야에 익숙한 고학력 청년 인재를 직업군인으로 끌어들이고, 나아가 이들이 전역할 때 관련 분야 민간기업 재취업으로 연결하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국방혁신 4.0 계획에 따른 첨단과학기술군 재편으로 18개월 복무기간 전자장비와 기계 비중이 높은 무기체계 등 첨단장비를 경험한 병사들이 제대 후 민간기업에 취업하기 위한 ‘취업 교육 시스템 구축’과 함께 전역 예정 장병이 수시로 기업과 접촉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제대군인 취업박람회’를 개최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청년들의 군인에 대한 직업 선호도를 높여 젊은 인재들이 부사관, 초급간부 등 직업군인을 선택하게 하고, 병사들의 제대 후 ‘단절 없는 취업’을 위해 민관 합동의 단기 기술교육 등 ‘전역 후 취업 프로그램’ 도입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모 일간신문이 지난 4월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를 통해 육해공군 및 해병대 현역 장병과 전역자, 장병 가족 등 2224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장병 87.9%가 ‘군 복무가 취업이나 학업 등 사회 복귀에 걸림돌이 된다’고 응답했다.
현역으로 복무한 18개월이 청년들에게는 전역 후 취업이나 학업 재개 등 사회 복귀에 어려움을 주는 이른바 ‘경력단절’로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응답자의 72.8%는 ‘징병제는 남성에 대한 차별’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엄효식 예비역 대령(전 합참 공보실장)은 “장병들이 전역 후 경쟁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내고 취업·학업 등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면서 “군이 선제적으로 병사들에게 취업 연계 등 보상 체계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정책에 추가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고순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20대에 1년 6개월을 잃는다는 것은 미래설계를 바꿔야 할 수도 있는 큰 문제”라면서 “인구 감소로 현역 판정률이 80%를 웃도는 상황에서 군 복무로 인한 박탈감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지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사관과 장교 등 초급간부들의 군 생활 만족도나 군인에 대한 직업 선호도가 급격하게 낮아지고 결과적으로 지원율이 떨어지는 것도, 근본적으로 전역 후 재취업 등 사회 복귀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과거에는 군인들이 민간보다 더 폭넓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우선 채용’돼 국가 발전과 사회의 변화를 이끌었다. 그러나 지금은 군이 민간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부사관 모집이 정원에 미치지 못하고, 초급간부들의 군 생활 만족도와 직업 선호도가 떨어지게 된 것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지난 9일 발표한 ‘MZ세대 간부의 군 복무여건 진단과 개선’에 따르면, 초급간부들의 군생활 만족도는 2019년 59.4%에서 2021년 46.1%로 크게 낮아졌다.
입대할 당시로 돌아간다면 다시 군인을 지원할 의사가 있냐는 질문에 긍정적 답변은 2019년 70%에서 2021년 57%로 확 줄었다.
지인에게 군인을 직업으로 추천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긍정적 답이 50.9%에 그쳤다. 현 소득 수준에 만족하는 비율은 32.5%에 불과했다.
청년들의 부사관, 장교 등 직업군인에 대한 낮은 선호도는 최근 수년간 부사관 충원이 목표에 미달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의 ‘2022년 국정감사 이슈 분석’에 따르면, 각 군 부사관 모집 목표에 미달한 인원 규모는 2017년 1만2200명, 2018년 1만4300명, 2019년 8100명, 2020년 1만400명, 2021년 9700명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월급이 최저임금보다 낮은 ‘급여 문제’에 원인이 있지만, 군 당국이 젊은 세대들에게 군 간부로서 명예, 직업군인으로서 자긍심 이른바 ‘신분’이라는 간판을 충족시켜주지 못한 부분도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
예컨대 청년들이 월급을 많이 받는 대신에 일·가정 양립이 불가능할 정도로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에 입사하려고 기를 쓰는 것은, 과장이나 부장 등 일정한 직급에 도달하면 임원을 달거나 좋은 조건으로 다른 기업으로 언제든지 옮길 수 있다는 비전과 꿈이 있기 때문이다.
문재웅 세종대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국방부는 장병들이 전역 후에 양질의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도록 군내 인재양성 프로그램 운영과 함께 민간이 주도해 제대군인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도록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이어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제복 공무원들이 긍지와 자부심 갖고 당당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제도와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을 실행하기 위해서라도 전역 장병들에게 많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12월 9일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장기복무 제대군인의 보훈특별고용 기회를 전역 후 3년 이내 1회에서 기간 제한 없이 총 3회로 늘렸다.
아울러 5년 이상 복무하고 전역한 중·장기복무 제대군인의 취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제대군인 고용 우수기업 인증제’를 신설했다. 제대군인에 대한 고용인원·안정성·고용환경 등을 평가해 일정한 점수 이상을 받은 기업에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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