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달러 투자에 관심이 뜨겁다.
기업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그 어느 때보다 환율변동 리스크가 큰 만큼 기업이나 개인이나 현명한 대응이 필요한 시기다.
올해 초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넘어서자 많이 올랐다고 판단한 기업은 거래은행과 달러를 약정환율로 미리 매도하기로 하는 선물환계약(선도계약)을 체결하였다. 주로 환율변동 리스크를 헤지(hedge) 하기 위한 차원이다.
하지만 예상을 벗어나 환율이 급등하면서 파생상품(거래 또는 평가)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영업에서 고환율로 얻은 이익을 파생상품 손실로 까먹는 상황이다.
코스닥 기업들도 파생상품 손실이 발생했다고 공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공시의무가 없는 회사를 포함하면 많은 기업이 선물환 손실을 보고 있다고 추정된다.
반대로 환율이 약정환율보다 낮아지면 파생상품 이익이 발생한다. 환율이 오르고 내리고 상관없이 경상이익은 약정환율(예 : 1200원)을 반영하는 수준으로 귀결된다.
이렇듯 상반기에 선물환계약을 체결한 회사들은 환율급등 효과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익이 증가할 수 있는 기회를 날린 셈이지만, 환율변동 리스크 헤지 목적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장기간에 걸쳐 수출대금을 지급받는 조선회사들이 주로 선물환계약을 활용하여 환율변동 리스크를 헤지하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헤지’(overhedge)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
STX조선해양(주)은 2006~2008년 수주 금액에 비해 과도하게 선물환 매도계약을 체결하였다. 예상과 달리 환율이 상승하자 추가적인 물타기 거래로 불행의 씨앗을 키웠다.
예상치 못한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등세를 보이면서 파생거래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회계분식을 통해 손익을 조작했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경영이 악화되면서 결국에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비운을 맞았다.
과도한 헤지는 더이상 헤지가 아니고 투기나 다름없다.
키코(KIKO, knock-in knock out) 사태는 아직도 잊지 못할 악몽으로 남아있다. 키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많은 수출중소기업이 환헤지를 위하여 은행과 체결한 통화옵션계약이다.
환율이 일정 구간(상단 knock-in, 하단 knock-out)에서 움직이면 약정환율로 달러를 매도할 수 있다. 하지만 만기 이전에 한 번이라도 상단을 넘으면 약정금액의 2배를 약정환율로 매도하여야 하고, 하단 밑으로 떨어지면 계약은 즉시 해지된다.
이는 리스크 부문에서 설명한 전형적인 꼬리 리스크(tail risk)가 있는 계약으로 꼬리에 해당하면 기업은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면 키코는 풋옵션(put option, 팔 수 있는 권리) 매입과 콜옵션(call option, 살 수 있는 권리) 매도를 1:2로 결합한 통화옵션계약이다. (예 : 하단환율 900원, 상단환율 960원, 행사환율 930원).
하단(900원) 밑으로 내려가면 풋옵션 효력이 즉시 소멸하여 기업은 행사환율(930원)로 달러를 팔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고 시장에서 낮은 환율로 팔아야 하므로 손해를 보게 된다.
상단(960원) 위로 올라가면 콜옵션 효력이 발생하여 기업은 행사환율(930원)로 약정금액의 2배를 팔아야 하므로 큰 손실을 보게 된다.
하단과 행사환율 구간(900~930원)에는 기업은 풋옵션을 행사하여 행사환율(930원)로 매도하여 이익을 본다.
행사환율과 상단 구간(930~960원)에는 기업은 풋옵션을 행사하지 않고 그냥 시장에서 행사환율보다 높은 환율로 매도하여 이익을 본다.
즉, 환율이 예상대로 구간 내에서 움직이면 크지는 않지만 이익이 발생하면서 환율변동 리스크 헤지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회사들은 보다 많은 이익을 얻으려고 수출금액을 초과하여 과도한 규모로 계약하고, 예상과 달리 환율이 상승하자 추가적인 물타기 계약으로 무리수를 두었다.
불행하게도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으로 환율이 1400원대로 급등하여 많은 회사들이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었다.
예상 수출액의 범위 내(예를 들어 50% 이내)에서 계약을 하면 설령 가능성이 아주 낮은 꼬리 리스크에 해당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손실을 보게 되지만 파산할 정도는 아니다.
환율이 상단 위로 상승하면 수출대금으로 받은 달러를 행사환율로 매도하면 되고, 하단 아래로 하락하면 계약은 해지되고 수출대금을 낮은 환율로 매도하면 손실은 감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2008년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수출도 감소한 상황에서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행사환율로 팔고, 추가로 시장에서 높은 환율로 달러를 매입하여 낮은 행사환율로 매도하게 되어 많은 회사들이 감당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었다.
그야말로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 결과 918개 수출중소기업이 3조1588억원의 환차손을 입고 300여개 기업이 파산되는 비극을 겪었다.
태산엘시디(주)가 대표적인 피해기업이다. 당시 매출이 1조원에 육박한 우량기업이었는데, 2008년 키코계약으로 7588억원의 손실을 기록하였다(매출액 7821억원, 영업이익 253억원, 당기순손실 7682억원).
2008년 3분기 말 기준으로 자기자본의 7000%를 넘는 파생상품 손실을 기록하여 2008년 말 회복 불능의 자본잠식에 빠졌다.
그 후 은행으로 출자 전환되었으나 2013년 매출이 급감하여 결국 법원에 파산신청하고 2014년 상장 폐지되어 사실상 소멸하게 되는 비운을 맞았다.
이렇게 환헤지 상품(법적으로는 ‘계약’이나 쉽게 설명하기 위해 ‘상품’이라고 함)이라 하더라도 꼬리 리스크가 있는 상품이거나 회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보다 과도하게 가입하는 경우 엄청난 리스크를 수반하게 된다.
예상대로 환율이 상·하단 이내에서 움직였다면 해피엔딩으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예상치 못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여 환율이 급등하고, 더욱이 기업의 과도한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파생상품이라 상품구조가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워 회사가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상품의 손익구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쉽게 말해 환율이 상단을 넘어가거나 하단을 내려가면 손실을 보게 된다. 또 수출금액보다 과도한 규모로 계약을 하면 재수 없으면 큰코 다칠 수 있다는 것이다. 중학생 수준이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상품의 설계와 운용은 전문가의 영역이다. 고객은 손익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신중하게 결정하면 된다. 다만, 환율을 예측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전문가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정치권에서는 키코가 사기 상품이라고 주장했으나 2013년 대법원은 “불공정거래상품이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이는 사기 상품이 아니고 정상상품이라는 것이다.
사전적으로 상·하단을 벗어나 손실 볼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품이다. 다만, 불운하게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등하여 큰 손실을 보게 되고, 과도한 규모로 계약하여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을 보게 된 경우다.
대법원은 은행이 수출중소기업에 상품을 판매하면서 리스크를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불완전판매 책임이 있다고 보고 일부 배상판결을 내렸다.
비슷한 맥락에서 2019년 금감원은 분쟁조정 과정에서 은행이 과도한 규모의 환헤지를 권유·체결하였다고 판단하였다(적합성 원칙 위반). 은행이 갑(甲)의 입장에서 거래기업에게 가입을 부추긴 측면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또 오버헤지 리스크를 충분히 그리고 명확히 설명하지 않은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설명의무 위반). 이를 고려하여 손해액의 15%~41%(평균 23%)을 배상하도록 결정을 내렸다.
결국 키코 사태는 수출중소기업의 과욕과 은행의 과도한 마케팅이 빚어낸 참사다. 과도하면 더이상 헤지가 아니고 투기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비극이다.
이 상품은 더욱이 꼬리 리스크가 있어 가입할 때 신중했어야 하는 상품이다. 고객인 기업이 보험회사 입장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품이기도 하다.
환율이 일정 구간 내 있으면 헤지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보험회사 입장으로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거나 조그마한 사고만 발생하여(확률이 높음) 소액의 보험금만 지급하는 경우다.
만약 환율이 일정 구간을 크게 벗어나면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된다. 보험회사 입장으로는 대형 사고가 발생하여(확률이 낮음) 엄청난 보험금을 지급하는 경우다.
이렇듯 키코 상품은 수출중소기업이 보험회사 입장이 되는 셈이다. 쉽게 말해 환율변동 리스크를 은행으로부터 사오는 꼴이어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달러에 대한 투자는 개인 투자자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자산관리에서 통화의 분산은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이다. 모든 금융자산을 원화로만 예금하고 투자하는 것은 분산투자 원칙에 맞지 않다. 상당 부분 달러 금융자산에 투자하여야 한다.
물론 예금도 어느 정도는 달러로 보유할 필요가 있다. 요즘처럼 환율이 상승하면 이익을 보게 되고, 환율이 떨어지면 손실을 보게 된다. 달러예금도 예금이므로 예금보호 대상이지만 원화로 환산하면 이익도 보고 손실도 보는 사실상 투자상품이다.
전형적인 달러 투자상품인 미국 주식형펀드는 올해 들어 주가 급락으로 큰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원/달러 환율 급등으로 원화환산 이익이 발생하여 주가 하락폭을 어느 정도 만회하고 있다.
역사적인 인플레이션으로 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S&P500지수는 올해 들어 약 25% 하락하였다. 하지만 원화로 환산된 손익은 환율상승으로 주가 하락 분을 어느 정도 상쇄하여 약 15% 내외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대체로 주식에 투자할 때는 기업 이익이 증가하여 주가도 오르고 그 나라 경제가 양호하여 통화가치도 상승하는 것을 기대한다. 주가와 통화가치 상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투자한다.
하지만 미국은 최근 주가는 급락하고 통화가치는 급등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안타깝게도 주가와 통화가치 동반 하락이라는 전형적인 침체 장세를 겪고 있다.
주식에 투자할 때 환율변동 리스크를 헤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구사하는 지수차익거래는 예외적으로 헤지를 하고 있다.
지수차익거래는 현물주식(지수구성종목)을 사거나 판 동시에 선물옵션을 팔거나 사거나 하여 현물과 선물옵션의 가격 차이를 취하는 전략이다. 주가 상승을 노리고 투자하는 전략이 아니다.
이 경우 현물과 선물옵션의 작은 가격 차이를 확정적으로 얻어야 하기 때문에 역외차액결제선물환시장(NDF시장)에서 환헤지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국의 중앙은행과 국부펀드는 우리나라 국채에 투자하는 주류 투자그룹이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재정 건전성이 양호하여 안정적으로 이자도 받고 우리 경제가 좋아져 통화가치도 상승(환율 하락)할 것으로 기대하고 투자한다.
이들은 통화 다변화 차원에서 우리 국채에 투자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국채금리가 높은 수준이지만 대체로 금리가 낮아 이자수익보다는 사실상 환차익을 겨냥한 원화 안전자산 투자로 보는 시각이 많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환율급등으로 이자수익에 비해 원화 가치가 급락하여 달러로 환산된 평가자산은 큰 손실을 보고 있다.
이렇듯 환율변동으로 주식과 채권의 투자 리스크가 커지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이례적으로 손실을 어느 정도 상쇄해 주는 경우도 있다.
보험회사가 달러보험을 공격적으로 마케팅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하지만 고객이 환율변동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가입할 때 신중하여야 한다.
달러보험은 달러로 보험료를 납입하고 나중에 달러로 보험금을 받는 상품이다. 보험회사야 전문적인 운용 능력이 있으므로 달러를 받고 지급하는 환율변동 리스크를 적절히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고객은 환율변동 리스크를 전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보험료를 내는 과정에서 환율이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고, 나중에 보험금을 탈 때 환율이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환율이 낮은 수준에서 내고, 나중에 환율이 높은 수준에서 받으면 덤으로 이득을 보겠지만, 반대의 경우는 당초 예상하는 보험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
환율변동 리스크를 고객이 떠안게 되므로 보험의 취지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객의 포트폴리오 분산차원이라면 더더욱 적절하지 않다.
대부분 종신보험으로 판매되는 달러보험보다는 그냥 일반적인 종신보험을 들면 된다. 포트폴리오 분산 차원에서 달러자산에 투자하고자 하면 별도로 달러 투자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달러 연금보험 상품은 더더욱 적절하지 않다. 달러로 보험료를 납입하여 투자하고, 달러로 연금을 받는 상품이다. 고객은 납입할 때나 받을 때 환율 변동 리스크에 노출된다. 노후 대비 상품으로 적절하지 않다.
<최윤곤 전 금감원 국장 약력>
- 금융감독원 33년 근무
- 자본시장조사국장, 기업공시제도실장, 광주전남지원장, 금융교육 교수 등 역임
-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University of Texas(Austin) MBA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