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환율 관련 보도가 쏟아지고 인터넷에서도 논란이 뜨겁다. 하지만 부정확한 용어나 단정적인 설명은 대중에게 오해와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
우리나라는 1980년 복수통화 바스켓 환율제도, 1990년 시장 평균 환율제도를 운영하다가 마침내 1997년 12월 외환위기를 계기로 자유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하였다.
변동환율제도 하에서는 시장에서 달러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 원/달러 환율이 결정되고 자유롭게 오르내린다.
이를 원화가치가 ‘평가절하되었다 또는 평가절상되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고정환율제도 하에서 정부 당국이 인위적으로 환율을 인상하거나 인하할 때 쓰는 용어다.
그냥 ‘절하(切下) 또는 절상(切上)’이라는 용어도 적절하지 않다. 한국은행은 변동환율제도 하에서 환율이 오르거나(원화가치 절하) 내리는(원화가치 절상) 의미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용어는 시장에서 환율이 자유롭게 오르내리는 의미라기보다는 인상 또는 인하와 같은 인위적인 조정의 뉘앙스가 강하다.
중국은 관리변동환율제도를 채택하여 환율을 관리하고 있다. 외환시장에서 종가환율, 복수통화바스켓(24개국) 변동, 재량적 조정장치인 ‘경기 대응요소’를 고려하여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이 다음날 ‘기준환율’을 고시한다.
중국 중앙은행이 조정장치를 통해 기준환율을 결정하여 고시하므로 고시환율에 대해 위안화가 ‘절상되었다 또는 절하되었다’는 표현이 그다지 부적절하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고정환율제도 용어에 익숙하고 더구나 일본식 용어가 관행으로 남아 있어 아직도 부적합한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냥 환율이 ‘올랐다 또는 내렸다’ ‘상승했다 또는 하락했다’ ‘급등했다 또는 급락했다’라고 하면 가장 일반적이고 적합하다. 쉽게 원화가치가 ‘내렸다 또는 올랐다’ ‘하락했다 또는 상승했다’ ‘급락했다 또는 급등했다’라고 하면 오해도 논란도 없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어 수출이 증가하고, 환율이 내리면 수출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여 수출이 감소한다는 주장이 많다. 교과서나 언론보도나 인터넷에서 많이 들어본 얘기이고 그렇게 믿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하지만 경제는 단순하게 단정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우며, 다분히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영향을 미친다. 또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영향도 달라진다. 단순하게 단정적으로 설명하면 받아들이기는 쉬울지 몰라도 오해와 편견을 심어줄 수 있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기업으로서는 수출량에 변동이 없으면 매출액이 늘어난다(예 : 제품 1개 1000달러, 환율 1150원→1400원이 되면 상품 1개 원화 판매대금은 115만원→140만원, 1만개 판매대금 115억원→140억원).
가격 인하 여지가 생겨 수출단가를 인하하면 수출량이 늘어날 수 있다. 이를 ‘가격효과’라고 하는데, 수출량이 얼마나 늘어날지는 그 제품의 가격 탄력성에 달려있다.
탄력적(탄력성>1)이면 가격(P) 인하 폭보다 수출량(Q)이 더 크게 늘어날 것이고, 비탄력적(탄력성<1)이면 더 작게 늘어 날 것이다. 결국 수출액(P×Q)은 탄력적이면 증가하고, 비탄력적이면 감소한다. 제품별로 탄력성이 다르므로 환율이 오른다고 해서 반드시 수출(액)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수출제품에 대한 수요는 꼭 가격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경기 둔화로 소득이 감소하면 소비를 줄일 수 있어(소득효과), 가격을 인하하더라도 오히려 수출물량이 감소할 수 있다.
최근처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여 수출업체가 단가를 인하하더라고 세계 경기가 둔화하고 있어 수출물량이 줄어들 수 있다. 가격효과보다는 소득효과가 크면 수출은 오히려 감소하게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2년 유럽 재정위기, 2018년 미·중 무역분쟁, 2020년 코로나 사태, 2022년 미국의 급격한 금리인상 등 환율이 상승한 시기에 대체로 세계 경기가 둔화하였다.
환율이 상승하면 수입이 감소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수입품 가격(원화기준) 탄력성에 달려있다. 탄력적이면 가격 상승 폭보다 수입물량이 크게 감소할 것이고, 비탄력적이면 작게 감소할 것이다.
에너지는 비탄력적이어서 에너지 가격이 상승해도 수입물량은 크게 줄지 않는다. 2022년 1월~10월 누계기준으로 원유 도입물량은 전년 동기간 대비 오히려 7.4% 증가하였다. 이는 원유가격(원화 기준)이 상승하였음에도 경기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수입물량은 오히려 증가하였다.
올해 들어서는 유가 상승까지 겹쳐 2022년 1월~10월 누계기준으로 원유 수입액은 전년 동기간 대비 67.9% 증가하였다(원유 수입액은 533억달러→895억달러, 배럴당 평균 도입단가는 67달러→105달러로 56.7% 상승함).
결론적으로 환율상승으로 무역수지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수출공급탄력성과 수입수요탄력성의 합이 1보다 커야 무역수지 개선의 효과가 나타난다. 이를 마셜-러너 조건(Marshall-Lerner Condition)이라고 한다.
환율이 오른다고 해서 수출기업이 반드시 혜택을 보는 것도 아니다. 수입국의 경기가 둔화하면 수출물량이 줄 수 있고, 수입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여 기업의 이익이 개선될지 장담할 수 없다. 또 우리나라 수출 주력제품은 일본이나 중국과 경쟁 관계에 있으므로 상대국의 환율 추이에 따라 수출이 영향을 받는다.
이렇듯 제품에 따라 탄력성이 다르고, 경제 상황이나 경쟁 상대국의 여건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 이를 단순하게 환율이 오르면 수출이 증가한다, 무역수지가 개선된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편견을 주입하는 것이나 다름 아니다.
더구나 환율이 오르면 당연히 수입 물가가 오른다.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 대부분이 수입 원자재를 사용하고 있어 국내 물가도 상승한다.
대표적인 수입품인 기름값만 보아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밀가루, 식용유, 라면값 등 생필품 가격이 인상되어 국내 물가도 비상이다. 해외여행을 위해 달러를 바꿀 때도 손해다. 대체로 환율이 오르면 소비자로서는 불리하다.
최근 수출에 대한 환율효과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환율효과를 분석할 때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환율(명목환율)보다는 교역상대국의 물가수준(실질환율)과 환율수준(실효환율)을 반영한 실질실효환율(real effective exchange rate)을 주로 이용한다.
실질실효환율은 주로 자국 통화의 대외구매력이나 자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파악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실질실효환율이 하락한다는 것은 국내 수출제품의 가격을 낮추어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발표된 산업연구원 정책보고서(산업경제이슈 제143호, 2022.10.19)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수출구조 고도화와 글로벌 분업체제 확대로 2010년 이후 주요 수출산업에 대한 환율효과는 크게 약화된 것으로 분석되었다.
대체로 실질실효환율이 하락하면 국내 수출 가격경쟁력이 상승하여 수출 증가를 견인하는 효과가 나타나는데, 2010년 이후 수출 가격경쟁력과 수출물량 간에 관계가 약화하였다.
먼저, 가격경쟁보다는 기술경쟁이 중요시되는 중고위·고위 기술산업군의 수출 비중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중고위기술산업과 고위기술산업의 수출 비중이 2005~2009년 64.3%에서 2020~2021년 72.6%로 8.3%포인트(p) 증가하였다.
구체적으로 우리의 주력 수출제품인 자동차, 디스플레이, 반도체, 2차전지에서 환율 변동으로 인한 수출량 변동 효과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실질실효환율이 1% 하락할 때 2010년 이전과 이후의 수출 증가 효과를 분석한 결과, 자동차는 0.96%→0.12%, 디스플레이는 1.69%→0.04%, 반도체는 1.24%→0.10%, 2차전지는 0.27%→0.09%로 나타나 환율효과는 거의 사라진 것으로 추정되었다(석유화학은 0.65%→0.66%, 일반기계는 0.82%→0.53%로 나타남).
이는 기술집약도가 높을수록 수출제품의 품질이나 기술우위 등 비가격적인 요소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여 환율의 영향이 감소한 것으로 분석되었다.
다음으로 글로벌 생산체제 편입(국제분업) 확대로 기업 내 무역, 해외 생산, 중간재 수출입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생산의 국제분업은 기업 내 무역(intra-firm trade), 해외 생산 등의 형태로 이루어져 환율 변동이 수출가격으로 전가하는 압력을 낮추어 환율 변동의 영향이 약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례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의 약 50~60%를 베트남에서 생산한다(국내 생산은 3~5%). 베트남에 진출한 국내 협력업체도 200여개에 달한다. 당연히 핵심 부품은 국내에서 생산하여 기업 내 무역의 형태로 베트남으로 수출되고 현지에서 스마트폰을 조립·생산하여 전 세계로 수출한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 중 중간재 수출 비중은 2010년 59.1%에서 2020년 72.2%로 13.1%포인트(p) 증가하였다. 최종재 수출 대비 중간재 수입 비중도 2000년 2.8배에서 2020년 4.0배로 크게 증가하였다.
실질실효환율이 하락한다는 것은 국내 수출제품의 가격경쟁력 상승(수출품 가격 하락)과 동시에 해외제품의 가격경쟁력 하락(수입품 가격 상승)을 의미한다.
중간재 수입 가격 상승은 국내 최종재 생산비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여 수출단가를 많이 낮출 수가 없다. 따라서 수출품 가격 하락을 통한 환율의 가격경쟁력 효과를 보기 어려워 수출변동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한다.
이처럼 수출산업 구조가 고도화되고 글로벌 분업화가 확대되면서 환율효과가 약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환율이 오르면 수출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이 증가한다는 단정적인 설명이 더이상 적절하지 않다는 얘기다.
2004년 정부는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국내기업의 수출경쟁력이 약화하는 것을 우려하여 역외차익선물환시장에 개입하여 환율 1140원 방어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 과정에서 1조8000억원의 국고 손실을 본 것으로 드러났다.
그 당시와는 우리나라 산업구조도 많이 달라졌다. 환율의 변동은 산업간, 기업과 소비자 간에 이해가 엇갈린다.
민간소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반 수준(2000년 54.5% → 2021년 46.0%)으로 소비자인 국민의 시각도 많이 달라졌다.
물론 수출산업은 고용, 투자, 무역, 외환, 대외관계 등을 고려할 때 우리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부문이다.
하지만 GDP 대비 수출의 비중은 2000년 23%에서 2011년 36%로 증가한 후 9년 동안 정체 상태다. 수출이 유발하는 부가가치의 GDP 비중 또한 2000년 15%에서 2015년 22%로 증가한 후 5년 동안 22%~23% 수준에서 정체 상태다(한국무역협회 2020년 제11호).
과거처럼 수출기업에 유리하다고 고환율정책을 쓰는 것은 이제는 타당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시대가 바뀌어 과거와 같은 외환시장 개입은 환율조작국 지정 등 국제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환율은 적정구간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경제에 우호적이다. 그렇다고 환율이 안정적으로 움직이도록 중앙은행이 시장에 개입할 수는 없다. 시장의 쏠림 현상으로 변동성이 심한 경우 중앙은행의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는 정도다.
환율의 효과는 거시적으로는 세계 경기 상황, 경쟁상대국 여건, 수출산업 구조, 글로벌 분업체계 상황 등에 따라 다르다. 미시적으로는 기업에 따라, 제품에 따라, 소비자와 생산자 입장에 따라 다르다.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초·중·고교 교과서에 경제 관련 용어나 설명이 부적합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경제 현상이나 영향에 대한 단정적인 설명은 합리적이고 열린 사고를 저해하고 편견을 심어주기 쉽다.
경제는 자연과학이 아니라 사회과학이다.
<최윤곤 전 금감원 국장 약력>
- 금융감독원 33년 근무
- 자본시장조사국장, 기업공시제도실장, 광주전남지원장, 금융교육 교수 등 역임
- 중앙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 University of Texas(Austin) MBA 졸업
